우리는 성공을 누구에게 빚지는가?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들이며, 열정적이며 자기 일을 즐긴다. 그들 중 상당수는 디테일에 강하다.
그래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은 좋은 습관을 기르려 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요소를 따라 하려고 애쓴다. 물론 그것은 합리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일까? 정말로 성공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기만 한 걸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겸손하게 행운 탓이라고 돌리는데, 그렇다면 시중의 비유대로 운칠기삼, 이라고 해야할까?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 교수는 자신의 정치철학
강의를 듣는 하버드 대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에 온 것이 꼭 너희들의 노력과 재능으로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버드생들은
그 대목에서 상당한 반발을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남보다 엄청 많이 공부를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샌델 교수는 이때 ‘형제 중 맏이들은 손을 들라’고 해본다. 그때, 수강생의 70-80%가 손을 들며, 이걸 보며 학생들도 놀란다고 한다. 형제 중 맏이들은 보통 노동윤리가 강하고 성공에 대한 의지가 강한 성향을 타고난다. 내가 맏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려는 의지를 더 갖게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누구에게 빚진 것일까?
더 나아가 보자.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되는 재능이라는 것, 예를 들어 똑똑한 머리, 성실성, 창의성 등도 인류의 보편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만약 하버드생의 천재가 수렵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떨까? 육체적 힘과
민첩함이 최고의 재능으로 섬겨지던 때를 만났다면 그는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결론은 개인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폭이 좁고 단기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성공한 것은 순전히
내 노력과 재능 때문이고 누구에게도 빚 진 게 없다고 생각하면 어떤 실천적인 귀결을 가져올까? 그는
성공의 과실인 부, 재산을 사회의 누군가를 위해 내놓을 때에 억울한 마음을 가지기 쉽거나(세금 납부 회피), 적어도 자신이 시혜를 베푼다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선심성 베풀기).
하지만, 만약 나의 성공은 나의 시대와 사회에, 선조에, 빚을 진 것이고, 무엇보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걸 깨달으면 어떨까? 성공의 과실을 왜 나누어야 하는지, 그것이 왜 시혜가 아니라 인간다운 도리인지를 알지 않을까 한다.
샌델 교수는 책의
말미에 이런 질문도 붙여 놓았다. 만약 우리가 일제 식민지시대 군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을 때, 그들이 “나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고, 선조가 한 부당한 처사에 손톱만큼의 영향도 끼친 게 없는데, 왜
내가 선조의 잘못을 사과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이래서 ‘서사적 인간’의 개념이 등장한다. 우리는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있게 했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큰 스토리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을 가질 때 선조의 잘못을 사과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우리 개인의 삶으로써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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