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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자로부터 한 통의 긴 편지를 받았다. 유년시절부터 지독하게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통과해 온 그의 삶에 어떤 한 조각의 조언인들 얹을 수 있겠는가, 다만 그 아픔에 공감할 뿐이고 그가 겪은 일들을 말하는 순간에 내가 그와 함께 있는 것뿐이다. 그 편지를 여러 번 읽고 또 읽으며, 나는 상처 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 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내 친구 강영진 박사가 쓴 책 <갈등 해결의 지혜>에서 인용해 본다.

 

반인반마 형상을 한 카이론은 어느 날 제자인 헤라클레스가 쏜 화살에 맞게 되는데, 그 화살에는 괴물 히드라의 피가 묻어 있어 상처가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다. 죽지 않는 신의 몸이기에 늘 그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던 카이론은 상처와 고통을 안은 채 다른 이들을 치료해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상처 받은 치유자란 여기서 나온 것으로,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 이를 학문적 개념으로 만들었다. 정신과 의사 혹은 심리치료사들은 일종의 상처 받은 치유자이다. 자신의 마음 역시 온전하지 않고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융은 환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무의식 중에 의사 자신의 상처와 상호 작용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 헨리 나우엔은 성직자들 역시 같은 인간으로서 상처와 고통을 안고 있으며, 자신의 상처에서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힘이 우러나온다고 했다. (We heal from our own wounds). “

 

강영진 박사는 오프라 윈프리를 상처 받은 치유자의 예로 들어 설명한다. 오프라 윈프리, 지금은 토크쇼의 여왕이라는 명성과 부와 존경을 다 지녔지만, 어렸을 적 그녀의 삶은 비참했다. 10대 부모에게서 가난한 흑인으로 태어났고, 따돌림과 성폭행을 경험하고, 열네 살에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죽는 것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고통스런 경험이 있기에, 타인의 모진 경험과 상처를 그대로 수용하고 진실하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희망을 불어 넣는 이유는 자기가 겪은 고통스런 일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상처 받은 이들과 함께 울고 서로 상처를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어떤 현명한 조언보다도, “나도 그랬었어그렇게 힘들었어..”라는 말에 더 위안을 받을 때가 있지 않은가?

 

인생은 다 자신의 선택이라는 격언은 너무나 옳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아프게 들린다. 선택할 여지가 없었던 유약하고 어린 시절, 너무 늦은 자각, 그런 것 때문이다. 상처는 로봇 만화의 주인공처럼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는 대상일 수 없다. 그것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리고 남들도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다는 유대를 느낄 때, 조금씩 나아진다고 할까. 나는 사연을 보낸 익명의 독자에게서 그런 것을 본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그가 누군가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음을 믿으며,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