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줄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 부화 시기가 되면 알 안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깨려고 아직 여리디 여린 부리로 온
힘을 다해 쪼아댄다. 세 시간 안에 나오지 못하면 질식하니 사력을 다한다. 그것이 병아리가 안에서 쪼아댄다는 뜻의 줄(줄)이다. 이 때 어미 닭이 그 신호를 알아차려서 바깥에서 부리로 알
껍질을 쪼아줌으로써 병아리의 부화를 돕는다. 이렇게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줄(줄)과 탁(啄)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 생명이 온전히 탄생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 말은 코칭을 하는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이런
줄탁동시를 만들어내는 어미 닭을 부모 역할에 비유해 생각해보자.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애정을 가지고 아이를 잘 관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타이밍을
잘 맞추는 센스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알이 보내오는 신호를 잘 들어야 한다. 즉 경청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멋대로 판단해버리거나, 무시하는 경우는 없는가?
부모는 그런 면에서 판단자(judger)가 아니라
학습자(learner)가 되어야 한다. 판단자는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상대방을 자신의 틀에 맞춰 판단하려 들지만, 학습자는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보려고 한다.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중심에 두는 그 호기심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든다. 판단자는 모든 것을 거의 자동적으로 판단해버리지만 학습자는 유연하게 타인의 관점을 수용한다.
자녀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공부를 하지 않아 걱정이라는 부모들이 많다. 이 때에도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하고 공부를 싫어하는 이유를 지레 짐작으로 판단하지 말고, 한 번 물어보자. 게임을 할 때 기분이 어떤지, 게임에서 얻는 즐거움을 다른 활동에서도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게임에 몰입하면 그 결과는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등등. 이때 답이 뻔한 유도 질문을 하기보다는 아이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듣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의외로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면 부모들이 간과했던 어떤 구조, 습관, 조건을 파악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꾸 까먹는 습관, 남보다 느린 행동, 정리 못하는
습성 등도 아이 나름의, 그걸 만들어내는 구조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학습자와 같은 태도로 아이의 말이 주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서 해법을 찾아나가 보자. 자신에게 필요한 해답은 사실은 자기가 갖고 있는 법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왜 안 되는지, 어떤 점을 바꾸어야 할지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함께 찾아낸 해법을 실행할 때 부모로서 무엇을 도와주면 좋을지 물어보자. 안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쪼아댈 때 밖에서 도와주듯이, 어디까지나
자발성을 전제로 한 조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 줄탁동시의 교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아닐까. 성급하고도 일방적으로 바깥에서 깨는 행동을 하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알을 파괴할 뿐이다.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고, 스스로 성장하도록 기다려주며, 잘 경청하고 필요한 순간에 실행을 하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부화한
병아리가 제 힘으로 알을 깨고 나왔다고 여길 것처럼, 아이들도 자기 힘으로 이룬 성장을 느끼고 그 든든한
내면의 자신감으로 세상을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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