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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은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잘 싸우고도 아쉽게 지는 바람에 사람들 마음에 긴 여운을 남겼다. 그 상태에서 일본-파라과이의 16강전을 바라보는 심정이 복잡했던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의견이 정확하게 반으로 갈렸다. 큰 아이는 일본이 이기길 바랐다. 아시아 국가가 하나라도 진출하는 게 좋다는 게 이유다. 둘째 아이는 일본이 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둘째에게는 왜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느끼는 정서니까.

우리의 이성은 일본이 잘한다고 해서 우리 실력이 낮아지는 건 아니다.’라는 자명한 논리를 알고 있지만, ‘경쟁심과 질투라는 강력한 감정 앞에서는 이성이 맥없이 무너진다. 그래서 모든 미디어가 일본의 경기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인 의미를 부여하였지만, 사람들은 우리도 올라가고 일본도 올라가면 모를까, 우리가 주저앉은 마당에 일본만 8강 가는 건 곤란하지’, 하는 마음을 떨치지 못한 것 같다. 경기 다음날 아침에 일본의 석패라는 결과를 확인하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는 없었다. 공식적으론 말 못하면서 마음으론 졌으면 하는 갈등을 안 겪어도 돼서 차라리 시원하진 않았을까?

 

경쟁 시스템이란 경쟁 참여자들에게 상대를 이기기 위해 더 잘하려는 의지와 긴장감,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체를 발전시키는 좋은 면도 있지만, 종종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문제 없이 잘 지내다가도, 잘난 사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경험을 한다. 상대가 재능이 뛰어나거나 큰 성취를 이뤘을 때, 쿨하게 인정 축하해주는 데서 멈추면 아무 문제 없다. 문제는 이를 즉각 나와 비교하며 자신을 비난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데서 발생한다. ‘저기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하는 열등감, ‘나는 여태껏 뭐했나?’ 하는 자기 비난 때문에 괴롭다. 상대가 매력적이라고 해서 내 매력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남과의 비교로 인한 시기심과 열등감은 미성숙하며 자기파괴적이다. 그래서 인격의 성숙함을 재는 바로미터 중의 하나가 남의 재능과 성공을 얼마나 편안하게 인정해주느냐가 아닐까 한다.

 

샘 혼은 책 <자신감, 내 인생을 바꿀 두 번째 기회>(원제: What’s holding you back?)에서 비교의 덫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제안한다. 골프를 치는 데 동반자가 멋진 드라이버샷을 날렸다고 해보자. 비교의 덫에 빠지는 마음의 경로는 이렇게 전개된다. “저 친구 드라이버 샷 굉장하네. 난 도저히 저렇게 못해.” “그래도 지난 홀은 내가 이겼잖아.” “나보다 훨씬 잘하네. 정말 창피해.”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난 형편 없어.” “그래도 친구 A는 내가 이길 수 있어. 나 다음으로 못 치니까.” 비교하기에서 자만심, 열등감, 자기 비난을 거쳐 만만한 상대에 대한 경쟁으로 이어진다.

비교의 덫에서 놓여나 건강하게 사고하려면 상대는 칭찬 인정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행동하고 변화시킬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공헌을 생각하라고 한다. “정말 굉장한 드라이버샷이야. 쭉쭉 뻗는군!” “얼마나 연습했으면 저렇게 되었을까?.” “나도 레슨 받을 때 폼을 교정 받아야겠어.” ‘스코어가 나빠도 웃어 넘기자. 함께 즐기는 게 중요하니까.”

성숙하고 수양이 잘 된 마음 속 풍경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일본이 승리해서 8강에 나갔다면 배는 좀 아팠겠지만, 월드컵 열기가 좀더 유지되거나 한국 축구의 개선점을 더 들여다 보게 되거나 하는 좋은 면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