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얼마 전 승진 심사에서 탈락했는데, 복도에서 마주 친 후배가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나를 무시했다’는 스토리를 쓰기 쉬울 것이다. 게다가 ‘흠, 승진 안 되었다고, 너까지 나를 무시한단 말이지?!’ 하는 억하심정을 갖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사실 때문에 감정이 상했다고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실 자체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후배가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를 무시했다’는 스토리를 쓰기 때문에 그게 ‘화, 괘씸함’ 등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감정은 행동으로 이어져서, 다음 번 회의자리에서 그 후배에게 면박을 줌으로써, 되갚아 준다. 즉, 사실a 스토리a 감정 a 행동의 순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조셉 그레니, <결정적 순간의 대화>)
문제는 한 가지 사실에 대해 가능한 스토리는 수만 가지라는 것이다. 복도에서 마주 친 후배는 컨텍트 렌즈를 빼고 와서 상사를 못 알아봤을 수도 있고, 혼이 나갈 정도로 급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프로세스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스스로조차 사실과 스토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코칭을 할 때, 고객들은 사실도 말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스토리를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만약 그 스토리가 고객을 제한하고 있다면 코치들이 해야 할 일은 사실과 스토리를 분리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하는 것이다.
재혼한 어느 부인이 방송을 통해 고민을 상담해 왔다. 중학생 딸과 초등학교 아들을 데리고 재혼했는데, 남편이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애들을 너무 미워해서 헤어져야 할 것 같다는 사연이었다. 아이들을 미워하는 행동은 자꾸 혼내는 것이었다. 아들이 일일 학습지를 다 풀어 두지 않으면 왜 게으름을 피우냐면서 심하게 혼내고 벌을 세웠다. 딸 아이는 짧은 치마를 입었다가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면서 엄청 타박을 당했다는 거다.
나는 이 부인께 결정적 대화 훈련을 시켜 드렸다. 첫째, 사실을 말한다. 자기 자식 아니라고 미워한다는 건 스토리지, 사실이 아니다. 둘째, 상대방의 긍정적 의도를 알아 주라. 셋째 나의 관점을 말하라. 넷째, 상대의 의견을 구하라.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아이가 학습지 다 풀어놓지 않았다고 야단치고 벌을 세웠죠. 딸 애 치마가 짧다고 ‘커서 뭐 될 거냐고 혼도 냈고요.(사실 말하기) 물론 아이들이 성실하게 자라기를 바라서 그렇게 혼낸다는
걸 알아요. (상대의 긍정적 의도 알아주기). 하지만 당신이
야단칠수록 아이들이 당신을 무서워하고 피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내 관점 말하기), 당신 생각은 어때요?(상대의 의견 요청)”
얼마 후, 이 부인으로부터 재혼 4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과 소주를 앞에 놓고 밤새 이야기를 했노라는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우리를
자극할 때는 사실과 스토리를 분리해 볼 일이다. 코치 받는 사람이 어떤 것에 흥분할 때 스토리에서 나오게
하는 간단한 질문이 있다. “상대방은 왜 그랬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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