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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을 상상하는 건 언제나 어렵습니다. 더 어려운 시기가 오면 떠나기 힘들고, 더 좋은 시기가 와도 역시 떠나기 어렵습니다. 저는 떠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믿습니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골드만삭스의 CEO로서 글로벌 금융 시장에 깊은 족적을 남긴 로이드 블랭크파인(Lloyd Blankfein)의 퇴임사다. 그의 화려한 성과보다 더욱 인상 깊은 것은 바로 퇴장 장면이었다. ‘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말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과연 우리는 의연하게 무대를 내려올 수 있을까?


두 번의 퇴임, 두 가지 배움

나에게는 두 번의 퇴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었다. 패닉이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두 번째 퇴임은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었기에 타격은 덜했지만 돌이켜보면 역시 충분히 준비된 상태는 아니었다. 현장의 하루하루는 긴장의 연속이다. 눈앞의 과제들은 늘 급박하고, 결정은 무겁다. 오늘을 견디는 데 에너지를 쏟다 보면 ‘직함 없는 내일의 나’를 상상하는 일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리더들이 준비하지 못한 채, 퇴임이라는 마지막 관문 앞에 선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준비 없이 퇴장을 맞이하는 경영자들의 모습은 여전하다. 그런 후배들을 볼 때면 예전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때 내가 코칭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후배들 역시 경영의 끝자락에서 단 몇 차례라도 코칭을 받았더라면 쓰디쓴 퇴직 술자리를 줄이고 보다 명료한 이정표를 손에 쥘 수 있었을 것이다. 퇴직 후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 맺으며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것은 단순히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의 철학과 리더십을 가장 깊이 있게 드러내는 진정성이 담긴 경영 행위다.


퇴임엔 준비와 성찰이 필요하다

위베르 졸리는 전자제품 판매점 ‘베스트 바이(Best Buy)’를 의미 기반 리더십으로 6년 연속 성장시킨 경영자다. 정점에서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준 후, 하버드 강의와 ESG·비영리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창출로 무대를 넓힌 그는 아름다운 퇴임의 교본이라 할 만하다. 단순한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일관된 자기 서사와 통찰이 있었다.


퇴직 경영자 코칭은 실용적인 퇴임 설계를 넘어 내면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소중한 ‘리추얼(Ritual)’이다. 만약 퇴임이라는 혼란스러운 순간, 내 운전석 옆에 믿을 만한 조언자가 함께했다면 어땠을까. 허둥지둥 멈추는 대신, 단정하게 정차하고 다시 멋지게 출발할 마음을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위베르 졸리 곁에도 분명 그런 이가 있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퇴임을 위한 작은 멈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은퇴 이후’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 꺼린다. 마치 퇴장 선언처럼 느껴져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날은 오고야 만다. 중요한 것은 그날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다. 퇴임을 또 하나의 시작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정렬(Alignment), 적응력(Adaptability), 인식(Awareness), 주체성(Agency)의 ‘4A’를 돌아봐야 한다. 새로운 가치와 목표를 정렬하고 강점을 인식하며, 변화에 유연하고 주도적으로 대응할 때 은퇴는 과감한 도약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의 무게를 온몸으로 버티고 있을 수많은 경영자들에게 조심스럽게 전하고 싶다. “퇴임의 이정표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다면, 옆자리에 누군가 있어야 합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ymsung8402@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