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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애도 기간이었다. 무안공항의 참사를 접하며, 누군들 그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보지 않았겠나. 우리도 태국 가족 여행을 갔었고, 친구들과 해외 골프에 들떠 돌아온 적 있으며, 공항에 가족을 마중 나가 언제 도착하냐는 카톡을 보냈었다. 너무 익숙한 상황이라 더 눈물이 났다. 그 슬픔 전에는 큰 분노가 있었다. 비상계엄과 탄핵사태를 보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상식이 무너지는 데서 느낀 건 당황과 분노였다. 그렇게 2024년 12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나니, 새해 2025년 1월이다.


생생한 감정이 주는 것들

누구나 분노나 슬픔이라는 감정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실은 감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분노(Anger)는 ‘아니오!’라고 말하고, 명확한 경계를 세우며 자기주장을 하게 한다. 큰일을 시작할 때나 지지부진한 토론을 끝낼 때,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분노의 에너지를 쓴다. 미움(Hatred)은 ‘죽은 나무’를 꺾어버리고 관계를 종료하는 에너지다. 이게 없으면 필요 없는 물건을 내다 버리지 못하고 프로젝트를 완료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끝내고 벗어나는 데, 꽉 막힌 경영의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데 이 리듬이 필요하다. 분노와 미움은 우리 자신을 직면하고 국면을 바꾸고 성장하게 한다.


슬픔은 상실에서 온다. 참사를 겪은 유족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건 슬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슬픔은 또한 놓아주고 풀어주고 항복하고 용서하는 감정이다. 슬픔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민감한 이야기, 하기 어려운 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당기는 감정이다.


사랑(Love)의 감정은 다른 사람을 환대하고 포용하며 관심과 배려를 표현하는 리듬이다. 조직에서 새로운 직원이나 새 프로젝트를 기대 속에 환영할 때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은 소속감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클린스라는 학자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중추는 신체 감각과 연결된다고 했다. 분노가 척추의 기본에 위치하고 미움은 장에 위치한다. 슬픔은 가슴과 횡격막 아래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사랑은 심장에서 발생한다고 썼다(Clynes, Sentics: The Touch of the Emotions, 1977).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후 어렸을 때 쓴 시를 소개한 걸 읽었다.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내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절로 미소를 지었다.


새해를 맞으며 나는 더 친절한 사람이 되자고 생각한다. 커피를 살 때, 카운터 직원에게 미소를 지으며 새해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잘못 걸려온 전화 같은 상대방의 실수에도 상냥하게 끝맺을 것이다. 더 많이 웃고 내 앞의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며 더 자주 감사를 표할 것이다. 나를 만난 사람들에게 온기가 전해졌으면 좋겠다. 슬픔과 분노가 그토록 생생한 것이었는데, 그래서 친절함과 감사도 더 컬러풀해지는 것 같다.


브레네 브라운은 ‘취약성의 힘’ 테드 강연에서, 중요한 말을 했다. 우리의 감정은 선택적으로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화나는 감정을 꽉꽉 눌러서 모른 척하다 보면 어린아이처럼 신나는 기쁨의 감정도 보드라운 사랑의 감정도 함께 눌러진다. 한마디로 무덤덤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슬픔도 분노도 껴안고, 남에게 더 친절하고 사랑을 주는 생생한 새해를 만들고 싶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