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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 시절 선망하던 회사로 이직했다. 회사의 매출이 커지면서 제품 홍보를 넘어선 기업 홍보의 필요성이 생겼고, 패션 경험은 없지만 기업 홍보 경험이 있던 내가 뽑힌 것이다. 나는 그때 차장으로 입사했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 과장이 나를 은근 슬쩍, 지속적으로 따돌렸다. 기자의 취재 연락도 며칠 후에 알려주고, 상무님과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도 나한테는 알려주지 않고 몰래 다녀오기도 했다. 그녀는 아마도 패션 업계 경험도 없는 내가 자기보다 높은 직급으로 입사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괴롭힘을 당한 것이 서럽고 억울했다. 억울함이 쌓여 눈물이 나올 때면 회사에서 울기는 싫어 회사 밖으로 무작정 뛰어나왔다. 누가 볼까 봐 뒷골목으로 도망쳐 길거리에 세워져 있는 차 뒤로 숨어들어가 엉엉 울곤 했다. 그 시절 나를 만났던 사람들은 내 슬프고 비참한 회사 생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친구와 만나 좋은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만 해도 부족한 시간을 그녀가 나를 얼마나 괴롭히고 있으며 내가 얼마나 비참하고 힘든지 이야기하는데 썼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아무리 들어줘도 끝나지 않는 성토대회를 듣고 있었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매우 미안하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만큼 절박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악으로 깡으로 2년여 가량을 버티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길을 가다가 머리를 하나로 묶어 꽁지머리를 한 사람을 멀리서만 봐도 가슴이 철렁할 정도였다. 직장 내에서 당한 괴롭힘은 마음에 오래 남아서 그 일을 잊는 데까지는 그 회사를 다닌 시간의 갑절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흘러 나도 다른 회사에 다니며 그녀와의 기억을 잊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보지 않고, 만나지 않으니 나의 마음도 조금씩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업계가 좁아서 사람들을 통해 그녀 역시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작년에 한국에서 ‘그랜드 테이스팅’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들을 맛보는 행사가 개최되었다. 친구가 마침 와인 홍보 일을 하고 있어 함께 구경을 갔다. 그런데 와인 부스 사이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반대쪽에서 걸어오던 그녀와 만났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철렁했다. 예전 같으면 기분이 확 나빠지면서 못 본 척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을 것이다. 정말 놀랐지만 그날따라 용기가 샘솟았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라는 나의 인사에 그녀는 “아, 네…”라고 말했다. “OO 다니신다는 말씀 들었어요. 잘 계시죠?” 업계가 좁아서 그녀도 분명 나의 소식을 알고 있을 텐데, 그녀는 “아, 예… 어디 계시죠?”라고 물었다. “네, 저는 메타에서 인스타그램 홍보를 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아 그러시구나…”, “행사 즐겁게 보시고 다음에 또 뵙죠.” 어색한 침묵이 살짝 흘렀지만, 내가 먼저 웃으며 마무리를 했다. 이렇게 십 년 만에 만난 그녀와의 만남이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내 가슴은 두 방망이 세 방망이를 쳤지만 기분이 좋았다. 내가 그녀를 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웃으며 안녕을 했다. 드디어 마음속의 짐을 덜은 것이다. 딱 10년이 걸렸다. 그간 내 마음이 조금 큰 것 같아서, 내가 좀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스스로 조금 자랑스러웠다. 내가 드디어 그 아픈 시절을 극복했구나 싶어 안도감이 드는 찰나, 10년 전의 나를 만나서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너의 고통이 마치 네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져서 힘들겠지만 10년 후의 너는 그녀를 만나서 먼저 인사를 건넬 정도로 여유 있는 어른이 된다’고. ‘힘내라!’라고 해주고 싶다.


그녀는 집에 가서 왠지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조금 성장한 만큼 그녀도 자랐겠지. 그녀도 지금은 더는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었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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