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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차 코칭 세션 이후 3주 만에 A 상무를 다시 만났다. 그의 얼굴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네요.”


이렇게 말하는 A 상무의 표정에 가벼운 미소가 보였다. 글을 쓰면서 그는 몇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중 하나는 그동안 자신이 의도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지시만 해왔다는 것이었다.


A 상무와의 코칭은 5회차까지 진전 없이 답답하게 진행되었다. 지난 세션에서 실행하기로 한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묻는 코치에게 A 상무는 억울한 표정으로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미 지난 세션에서도 반복된 내용이다. ‘부하들은 나만큼도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능력이 부족한데 노력 하지 않는다’, ‘회의 때 자기 의견을 말하는 부하가 없다’, ‘잘하는 것이 없는데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불평만 많다’ … 그는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코치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A 상무의 신념을 바꾸려는 나의 시도들은 번번히 빗나가고 성찰적인 질문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어렵게 만든 실천 계획이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음 세션에서 그는 실천하지 못한 이유를 반복해 설명할 따름이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리더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코치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심하던 나는 A 상무에게 부하들을 위해 시도한 행동들을 매일 글로 적어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제안이 아니라 요청이었다. 염려와 다르게 그날 이후 A 상무는 부하들을 위한 자신의 행동들을 적어 보냈다.


처음에는 1) 유관 부서에 부하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음 2) 방향을 못 잡는 부하의 업무를 명확하게 정리했음 3) 잘못한 부하에게 화를 내지 않고 참았음 이런 식으로 글머리 표를 사용한 행동 리스트를 보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좀 더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듯 묘사해 달라고 주문했다. 어렵다, 잘 안된다며 불평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A 상무는 포기하지 않았고 나도 그의 글에 내 생각과 응원을 담아 반응해 주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5~6개의 행동 리스트였던 글이 점차 한가지 행동에 초점이 맞춰지고 상세해졌다. 그가 나를 의식하며 변화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기는 순간 글쓰기가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한다. 글을 쓰며 자기주장의 모순과 부족한 논리의 합리화를 알아차린다. 더구나 누군가 자기 글을 읽는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 자연스레 전후 맥락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재구성할 필요를 느낀다.


작가 은유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라는 책에서 ‘글쓰기는 믿을만한 객관화 장치’라고 말했다. 리더의 글쓰기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자신과 상대의 상황을 살펴보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자기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며 천천히 안내하고 설득하는 힘을 제공한다. 글 쓰는 동안 스스로 ‘공정한 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리더에게 꼭 필요한 자기 인식(self-awareness) 역량에 기여한다. 리더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코칭 사례 게재 동의를 받은 글입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jongkim1230@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