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코칭 교육을 들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교육이었는데,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같은 조였던 50대 중소기업 부대표는 처음에는 기억이 안 난다고 모르겠다고 하다가 갑자기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아주 어릴 적인데 할머니가 난롯불에 김을 구워주셨다고 한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할머니가 구워주는 맛있는 김을 받아먹던 기억, 등을 긁어주시던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눈물을 글썽이셨다. 순간 나도 우리 할머니가 보고 싶어져서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또 다른 참가자분은 한겨울에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가족과 캠핑을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 아들들은 텐트 앞에서 눈사람을 만들면서 놀고, 옆에 앉은 부인은 맥주 한 캔을 따며 둘이 함께 ‘행복하다’라고 느꼈던 기억. 누군가는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자신을 위해 환하게 웃어주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이 질문을 듣자마자 첫아이를 낳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배가 점차 불러오면서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까 기대가 되었지만, 출산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10시간이 넘는 진통 끝에 아이가 세상에 나왔고 새 생명을 본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작고 빨간 얼굴의 쪼글쪼글한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감격과 충만감이 몰려왔다. (나중에 신랑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아마도 열 달 동안 배속에 품고 있던 생명을 실제로 마주한 엄마만큼 감격스럽지는 않았나 보다.) 동시에 다른 기억도 떠올랐다. 재수하고 집에서 대학 합격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시간이다. 초조하게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던 어느 순간 전화벨이 울리고 “합격하셨습니다.”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옆에 앉아서 같이 마음 졸이고 계시던 할머니가 “아이고 다정아!” 하면서 엉엉 우시던 생각이 난다. 동시에 할머니가 우시던 다른 장면도 같이 떠올랐다. 대학교 때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인천공항에 친구들이 배웅을 나왔다. 할머니도 같이 오셨는데 웃으며 “얘들아, 잘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떠나려는 순간, 할머니가 또 “아이고, 다정아!” 하며 엉엉 우셨다. “할머니 왜 우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우시니까 저도 눈물 나잖아요.”라면서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내 행복한 기억은 모두 사랑의 기억이다. 내가 누군가를 아무런 조건 없이 무한하게 사랑했던 기억.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나를 믿어주고 내가 잘 되기를 바랐던 사랑의 기억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주고 힘을 주었다. 나를 나답게 해준 힘이다. 나는 이 질문이 참 좋아서 모임에 갈 때마다 이 질문을 들고 다녔다. 백 명의 사람에게 물어보면 백 명의 행복한 순간을 만났다. 교회 순모임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시는 집사님은 교대에 입학해서 만난 친구들을 얘기했다. 동기로 친해진 4명이 모두 신앙인이었고 ‘복의 근원’이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만들어서 과에서 힘들고 험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발 벗고 나서 해결해 주는 봉사를 했다고 한다. 선한 영향력을 마음껏 발휘했던 기억이라며 웃으시는데 웃음이 참 맑았다. 행복했던 기억을 바로 손꼽아 답하기는 쉽지 않다. 살아가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매일 떠올리며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해 말하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행복이 묻어난다. 그들은 그 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행복감을 다시 체험한다. 행복했던 그 사랑의 기억이 우리가 살아갈 힘을 준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충만해지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행복했던 기억을 수시로 떠올리고 그 따뜻한 에너지 안에 머물러야 한다.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본 글은 국민일보 혜윰노트에 게재된 글입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schocopie@naver.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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