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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제약회사의 임원 워크숍을 하느라 여러 임원들을 몇 번에 걸쳐 만났다. 그 회사의 내부 사정을 알기 위해서 회장, 사장과도 인터뷰를 했다. 대부분 임원들은 오래 직장 생활을 한 탓에 회장 앞에서 자기 의견을 감추었지만 연구소장만은 자기 의견이 뚜렷했다. 현재 회사의 문제는 무엇이고 이번 워크숍에서는 이런 어젠다를 다루어 달라는 주문도 했다. 모든 게 명쾌했다. 워크숍이 끝난 후 따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어 그분의 얘기를 들었다.


“전 서울의대를 나온 의사입니다. 수련의를 끝내고 지방의대 교수를 몇 년 했지요. 월급은 적었지만 그런대로 지낼 만했습니다. 근데 뭔가 갑갑하고 저와는 안 맞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변화를 꿈꾸었지요. 그러다 천식이란 병의 위험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 활동의 하나로 거북이 마라톤 대회란 걸 하게 되었습니다. 천식은 악화되었다 저절로 좋아졌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조기치료를 안 받아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전 총무로서 모든 행사의 기획을 맡았습니다. 펀딩을 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제약회사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등등… 2년간 그 일을 했는데 성과도 많고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내게 이런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세상이 참 넓다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그러다 글로벌 제약회사의 오퍼를 받고 그 회사에서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마케팅 일도 하고, 해외 근무도 하고, 코칭 같은 다양한 교육도 받고… 기존 의사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생활을 할 수 있었지요. 지금은 로컬 회사의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데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시스템은 덜 갖추어져 있지만 의사결정이 빠르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예전에 저는 제 잘난 맛에 살았습니다. 쫓아올 수 있으면 쫓아와 봐(Catch me if you can)가 제 모토였지요. 말할 때마다 늘 ‘그건 아니구’라며 반박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밥맛인 사람이지요. 근데 코칭 교육을 받으며 달라졌습니다. 상대 말을 경청하고 그 말을 반복하면서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독불장군 성격이 강한 의사들에게 이런 교육이나 코칭을 하는 것도 제가 가진 꿈 중의 하나입니다.”


전문가 중 답답한 사람들이 제법 있다. 공부 좀 잘했다는 거 하나로 세상 모든 걸 안다고 착각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 비슷한 부류의 사람하고만 만나다 보면 그런 성향이 고착화되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럼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진상 혹은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근데 이 분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코칭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얼마나 옹졸한 사람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코칭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객관적으로 자기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이 분을 만나면서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새로운 도전의 중요성이다. 안정이 좋긴 하지만 지루할 수 있다. 도전은 위험할 수 있지만 대신 활기를 얻을 수 있다. 그분은 실제 이를 증명했다. 또 다른 하나는 일의 중요성이다. 사람은 같이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혼자 일할 때는 알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 수 있고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 수 있고 그러면서 다듬어진다. 의식 수준이 올라가고 성숙해진다. 자기만 생각하던 사람이 상대 입장에서 보는 눈도 생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인간이란 존재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것을 배우게 된다. 현재 그분은 계속 업그레이드되어 대기업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