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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기 전에 집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기 전에 집사람이 오늘 저녁은 ‘왕새우 갈릭버터구이’하려고 하는데, 어떻냐고 물어왔다. 흔쾌히 “넘 좋아”라고 대답했더니, 그러면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느타리버섯을 좀 사 오라고 했다. 그로부터 퇴근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인데 시간이 참 더디게 간단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은퇴하기 전의 기억이다. 그때는 집사람의 식탁 메뉴에 불만이 많았다. 당시는 워낙 바쁘게 살던 때라 집에서 저녁을 먹는 경우가 적었고, 대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밥을 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가족과 함께 먹는 저녁은 나에게 소중했다. 정신없이 회사 일에 과몰입되어 있는 나에게는 가끔씩 가족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는 것이 필요했고, 또한 집사람의 정갈하고 심플한 요리가 나에게는 많은 힐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리를 잘하는 집사람은 언제나 내가 접했던 메뉴들만 돌아가면서 대충 내어주었다. 그래서 때때로 볼멘 목소리로 “난 말이야. 당신의 멋진 솜씨로 내놓은 새로운 요리를 먹고 싶단 말이야. 맨날 그렇고 그런 음식만 내놓으니 미칠 것 같애!”라고 항의 아닌 항의를 했고, 집사람은 “나 참, 대충 먹어요. 당신한테 뭘 새롭게 해주고 싶어도 저녁마다 바깥에서 만찬인데 집에서만이라도 가볍게 드시라는 나의 배려올시다.”라며 내 요구를 헌신짝 내팽개치듯이 묵살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은퇴 전의 새로운 요리에 대한 갈망은 채워지지 않았고,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5, 6년 전 은퇴하고 난 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루는 집사람과 둘이서 저녁을 먹는데, 내가 못 본 새로운 요리가 올라온 것이다. 문어 카르파초였다. 문어는 집사람이 즐겨먹는 식재료인데, 우리 집 먹는 방법은 문어숙회에다 언제나 초장이나 간장을 찍어 먹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날은 문어숙회에 아주 멋진 샐러드가 더해진 것이다. 양파와 방울토마토에 레몬즙과 올리브유를 드레싱하고 그 위에 강판에 간 레몬 껍질을 살짝 올려 식감을 높인 요리였다. 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아니, 당신. 이 요리 첨 보는데?” “응, 첨 해봤는데, 어때?” “응응, 엄청 맛있어.” “당신이 하도 새 요리, 새 요리 노래를 불러서 유튜브 요리 코너에서 검색해서 함 해봤지. 이탈리아 요리인데 괜찮아?” “와, 이거 첨 해본 거야? 엄청난데?”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코칭 시 열심히 배우고 익혔던 ‘칭찬과 인정’의 내용이 떠올랐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거지만 더 효과가 있는 것은 ‘존재에 대한 인정’이라는 것. 칭찬은 어떤 행동에 대한 선택이나 그 결과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고, 인정은 어떤 사람의 성품이나 잠재력, 가치 등을 알아주는 행위이다. 따라서 최고의 칭찬은 그 사람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인 것이다.


“와우, 당신 천재야!”


나도 모르게 난생처음 집사람한테 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간 코칭 공부를 열심히 하고, 동료들끼리 실습도 많이 하면서 머릿속에 둔 말이었다.


그날 남편에게 난생처음 ‘천재’라는 극찬을 듣고 기분 좋아하는 집사람과 아주 즐겁게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날 이후로 집사람이 틈만 나면 새로운 요리로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었다. 더불어 새로운 요리가 나오면 나올수록 내가 하는 ‘당신 천재야’라는 말은 둘 사이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말이 되었다. 처음 할 때는 머리가 쭈뼛쭈뼛했었는데 이제는 입에 익어 아주 자연스럽게 때에 맞춰 잘 나온다. 덕분에 풍성해진 식탁만이 아니라 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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