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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에 무모한 공부를 시작했다. 무려 건축학 박사에 도전한 것이다. 컴퓨터공학 학부를 거쳐 조직관리와 경영을 복수 전공으로 석사를 마친 뒤 25년여 넘게 기업 컨설팅과 코칭에 몸담고 있는 나의 이력서에 다소 엉뚱한 한 줄이 아닐 수 없다. 풀타임 일을 병행하며 아들딸 벌의 학부생들과 전공필수 건축학개론부터 시작하여 학위모를 쓰기까지 5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주제는 ‘지역 사회 기반 고령 친화 정주 환경 조성에 관한 연구’로서, 은퇴 후 노년기를 보내게 될 주거 환경과 지역 인프라와 같은 하드웨어 측면은 물론, 생활지원 서비스와 커뮤니티 네트워크와 같은 소프트웨어 측면을 아우른 지역 모델을 제언하는 내용이다. 연구의 결과보다 연구 과정에서 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코칭과 관련한 생각을 나눠본다.


연구 방법론 중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면대면 심층 인터뷰였다. 은퇴한 연구참여자들의 노년기 삶에 대한 진솔한 욕구를 끌어내기 위해 코칭 대화 방식을 접목한 것이다. 라포 형성은 물론, 대부분의 질문을 열린 질문, 중립적 언어, 적극적 경청, 공감과 인정까지 인터뷰 시간만큼은 연구자에서 코치로 태도 전환을 한 것인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물론 연구자인 나조차 리서치 조사가 아닌 라이프 코칭이라 느낄 만큼 속 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이런 코칭 방식의 대화를 처음 해 보신 분이 대부분이었지만 은퇴 전 기업이나 기관에서 리더십 코칭, 팀 코칭 등을 접해본 분들도 의외로 많았다. 코칭 대화를 처음 경험해 보신 연구참여자들은 리서치 인터뷰임을 잠시 잊고 노년기에 들어선 삶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코칭 대화에서 기운을 받는다고 하셨다. 일부 참여자는 은퇴 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모호했던 계획이 정리되고 있다며 눈을 반짝이며 지속적인 코칭을 요청하시기도 하였다. 나아가 은퇴 전 코칭을 접해 보신 분들도 회사가 코칭 프로그램을 지원해 줄 때는 잘 몰랐는데 정작 은퇴 후 오롯이 혼자 직면하는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하고 보니 어느 때보다 코칭이 더욱 필요할 때라고 토로하시는 분도 계셨다.


코칭은 생애주기에 걸쳐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처럼 은퇴 후에도 이어져야 한다. 조직에서 막 은퇴한 베이비 붐 세대는 지역의 커뮤니티 연대를 끌어갈 수 있는 더없이 귀한 자원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이미 각자의 강점을 기반으로 수십 년간 조직에서 검증된 리더로서 잠재력이 있고, 자신이 여생을 보낼 지역에 대한 애정이 충분하지만 노인복지회관의 어르신으로 돌봄을 받기에는 너무 이르다.


이렇게 은퇴는 했으나 몸과 의욕은 현역 못지않은 베이비 붐 세대를 지역의 인적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생애주기 때보다 주도적인 노년기를 보낼 수 있는 체계적인 코칭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각 지역과 커뮤니티 특성에 따라 지역 리더십 코칭, 커뮤니티 그룹 코칭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지역자치단체와 함께 추진할 수 있다면 지역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다양한 역량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 내 시니어들과 함께 보다 현실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늦은 나이에 사서 고생인가 싶어 중도 포기 유혹도 많았지만, 연구에 참여해 주신 은퇴 선배님들의 응원과 지지가 마지막까지 완주하게 된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역 커뮤니티 리더십 코칭’의 불씨를 감지할 수 있었던 귀한 배움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전후 격동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왔을 그들이 인생 후반기에 그동안 발현되지 못했던 숨은 강점까지 끌어내어 진아(眞我)로서의 새로운 전성기가 익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yhy3131@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