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무슨 말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아내 사주는 흙이고 제 사주는 물이거든요. 우리가 만나면 진흙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웃자고 한 얘기다. 부부관계는 어떠신지? 좋은 남편, 좋은 아내로 살고 계신지? 나이가 들수록 남자에게 아내의 소중함이란 극명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아내에게 남편의 존재란 어떨까? 남편이 아내를 필요로 하는 만큼 아내도 남편을 필요로 할까? 만약 나이 들어서도 아내가 남편을 꼭 필요로 한다면 그 남자의 인생은 성공적이다. 나는 아내에게 어떤 존재일까? 젊어서는 아내와 싸우고 경쟁할 수 있다. 화면조정 시간이고, 맞춰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근데 나이가 들면 바뀌어야 한다. 나이 든 노인이 아내 말 안 듣고 빠득빠득 자기 고집을 피우는 건 보기 민망하다. 난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아내와의 전쟁에서 이기면 어떤 이익이 있을까? 국가에서 포상이라도 해주나? 아니면, ‘아내와 싸우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아내와의 전쟁에서 이기길 바랍니다.’라는 칭찬을 받을까? 난 차라리 그 힘을 아껴 밖에서 일하고 한 푼이라도 돈을 벌어 아내에게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에서는 힘을 빼고, 밖에서는 힘을 쓰라고 조언하고 싶다. 난 태생적으로 싸우는 걸 싫어해 신혼 때도 거의 싸운 적이 없다. 일단 게임이 되지 않는다. 아내는 나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데이터를 갖고 있고, 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싸움이란 데이터가 있어야 가능한데 아내는 내 상대가 아니다. ‘넘사벽’이다. 그래서 투쟁 대신 복종의 전략(Surrender Strategy)을 택했다. 한용운의 복종이란 시를 상기한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님에게 아내를 대입하면 그대로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로운 독거노인보다는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 남편으로 남고 싶다. 아내의 지시를 거역하다 쫓겨나는 중년 남성보다는 복종하면서 사랑받는 남자가 되고 싶다. 아내의 잔소리와 지시는 내게는 사랑의 고백으로 들린다. 가정에서 내 처신술의 핵심은 의견이 없는 것이다. 정말로 아무 의견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아내 말을 따른다. 그런 처세를 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제법 괜찮은 전략이다. 우선 편하다. 마찰이 없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다. 그저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 근데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아내 귀에는 안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대가 화를 내면 방어는 단단히 하되, 얌전히 샌드백이 되는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에 정면으로 맞서봐야 어차피 이길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현명한 뱃사공처럼 그저 목을 움츠리고 뭔가 다른 생각을 하며 무지막지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복종의 전략을 잘 쓰는 것도 현명한 사람의 미덕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
PREV [김성회] 거절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NEXT [김병헌] 패러독스를 관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