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쯤의 일이다. 입사 6년 차인 대리 시절, 20여 명 정도가 투입된 회사의 중요 IT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막중한 중책을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던 때였다. 매일을 그날 출근해서 그날 퇴근하던 것이 불가능했던 시절, 과장도 아닌 일개 대리가 그런 큰 프로젝트를 맡았으니 책임감과 중압감은 난생처음 느껴보던 것이었다. 6개월이 넘는 프로젝트 기간 중에는 회사에서 밤샘하는 일도 잦았고, 개인적인 일은 모두 버리고 몰입에 몰입을 더해갔다. 온몸을 던져 프로젝트에 임한 만큼 자부심도 컸으며, 그 대형 프로젝트가 바로 자신인 양 자랑스러운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 말미로 가면 갈수록 ‘이 프로젝트야말로 내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고, 나의 실력을 자랑하는 것이자, 바로 나의 것’으로 변해갔었다. 그때, 개발 완료를 바로 눈앞에 두고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가 S 그룹 전체의 IT 전문가로 뽑혀, 일본에 6개월간 연수를 떠나게 된 것이었다. 그 연수는 IT 실무자이면 누구나 동경하던 것이었고, 나 역시도 엄청 원하던 연수였다. 하지만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피땀을 쏟아부은 프로젝트가 거의 완성 직전이고, 내 실력과 노고를 만천하에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그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갈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룹의 전략실에서 다시 한번 강한 지시가 내려졌고 어쩔 수 없이 허무하게도 모든 것을 버리고 연수를 가게 되었다. 내 자식 같은 프로젝트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연수를 떠나면서 ‘그래, 두고 보자. 내가 없어도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성공할 줄 아는 모양이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완성해서 현업에 적용할 시점에는 온갖 문제들이 폭발할 거야. 그때는 내가 없으면 해결하기 힘들걸. 당연하지. 얼마 안가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바보 같은 아집이었다는 것을 연수 현장인 일본에서 깨닫고 말았다. 남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프로젝트는 잘 완성되었고, 현업 적용 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잘 클리어하면서 큰 탈 없이 마무리된 것이다. ‘내가 없이도!’ 말이다. 엄청난 쇼크였다. 아니 이럴 수가! 분명 그 프로젝트는 나의 것이고, 내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작품인데, 어째서?라는 탄식을 며칠 간이고 되뇌고 되뇌었다. 어찌 보면 이 경험이 회사 생활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고, 훨씬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때 일본에서 많은 반성 끝에, ‘회사의 일은 한 개인의 능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내가 맡은 일은 내 것이 아니다. 회사의 것이고, 공통의 것이며 우리 모두의 것이다. 더불어 또 큰 깨달음은, 내 업무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어떤 업무를 맡더라도 흔쾌히 수락하고, 현재 내가 맡고 있는 업무는 언제든 인수인계가 될 수 있도록 잘 정리하고, 더 나아가 지금 맡은 업무를 남부끄럽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잘 진행해 놓자. 이것이 스마트하게 회사 생활을 하는 법이다’라는 성찰이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대형 프로젝트 완성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과 그에 따른 성찰 하나가 이후의 회사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더 가치 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하게 되었다. 회사 일은 내 것이 아니며, 더구나 나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다는 생각으로 회사 입장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생기게 해준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kdaehee@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