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년 전, 매주 독서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저자, CEO, 전문가들이 나와서 강의를 했는데 좀 특이한 점이 있었다. 기업으로 크게 성공했으면 어떤 전략으로 성공했고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핵심일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 민족의 앞날을 얘기했다. 여성이 사회의 주체로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강조했다. 성공하면 모두 애국자가 되는 건가, 내심 놀랐다. 거대한 담론에 대한 고상한 얘기처럼 들렸다고 할까, 속으로는 이익을 따지면서 겉으로 좋은 말 하는 허세가 아닌가 의심했다. 심지어 나는 손을 들고 질문도 했다. 해양업에서 큰 사업을 일으킨 분에게 “사업가로 성공하셨는데, 국가와 민족을 더 고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의제가 현실과 동떨어진 고상한 허세로 들렸던 것은 그때 내 의식수준이 딱 그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얼굴이 붉어졌다.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중세 때도 궁정의 어젠다와 시장 골목의 어젠다는 달랐지’라고 한마디로 일축한다. 흠…시장 골목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와 같다는 거지? 그때 나는 무엇에 몰입하고 있었던가? 한 기업의 본부장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매출을 늘릴까, 좀 더 성장할까, 거기에 날카롭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음은 분명하다. 발달 수준에 따라 다룰 수 있는 복잡도가 다르다 성인 발달이론의 핵심은 발달단계에 따라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복잡도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기회주의자는 자신 외에는 책임을 질 수 없고, 팀을 이끌려면 최소 성취가가 되어야 한다. 조직의 지속가능성과 브랜드에 책임지는 사고는 전략가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하다. 복잡도로 따지자면 정치는 연금술사 수준의 성숙도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대선 전야의 상황을 보고 있자면, 그만한 의식수준을 갖췄는지를 되물어보게 된다. 성취가나 개인주의자, 심지어 기회주의자의 언행도 많지 않은가? 왜 사업하는가? 정부의 요청으로 그가 일본 항공의 무보수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경영철학의 전파였다. 일체감이 없고 패배감이 가득한 조직에서 회사가 도산했다는 현실을 깨닫게 하고 반성하고 용기를 내어 개혁에 나서게 한 것은 인센티브가 아닌 철학이었다. 공항 카운터의 고객담당 직원, 객실 승무원, 기장과 부기장, 정비사까지 현장에서 직원들을 만나며 불요불굴(不撓不屈), 즉 흔들리지 않고 굴하지 않는 마음을 강조했다. 그 결과 동일본 대지진 상황에서 직원들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해낸다. 기내에 갇힌 승객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제공하고, 라운지에 갇힌 고객에게 사비로 초콜릿을 사다 주거나, 재난 지역에 달려가는 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위로 방송과 격려 편지를 넣어주는 일, 자식에게 가야 할 길이 끊긴 노모를 모셔다 준 직원까지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나왔다. “뜻을 높이고 경영을 발전시킨다”라는 일관된 철학과 이타심을 강조한 결과였다. 나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발달하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자신과 조직의 이익만 생각하는 단계를 벗어나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깊이 생각해 본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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