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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부잣집 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아버지가 부자인데 내가 공부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것 같다. 내가 노력을 안 한다고 가세가 기우는 것도 아니고 먹고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동기부여가 안됐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가난한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만사에는 양면이 있다.


한 부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낳고 보니 아토피다. 둘째도 낳았는데 역시 아토피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심했다. 부부는 절망했지만 운동을 열심히 시키고 식단도 철저하게 조절했다. 자식들에게만 이를 강요할 수는 없어 부모들이 솔선해서 그 일을 했다. 세월이 흐른 후 부부는 이런 말을 했다. “참 원망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헌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큰 축복이었어요. 이 나이에 이렇게 건강하기 쉽지 않거든요. 완전 표준 체중에 잔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애들 아토피 덕분에 우리들이 이렇게 건강해졌답니다.”


당뇨병으로 고생을 한 소설가 최인호 씨도 비슷한 고백을 한다. “당뇨병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율적으로 공부하지 못하는 열등생에게 매일매일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처럼 내 게으른 성격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평생을 통해 먹고 마시는 일에 지나치지 말고 절제하라고 숙제를 준 것이다.”


엔지니어 출신의 김송호 박사도 우울증에 대해 비슷한 얘기를 한다. “우울증이라는 것도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은 그동안 밖으로만 향해온 자아의 시선을 안으로 돌리려는 자연적 현상일 수 있다. 타인을 위해 살던 삶에서 자신을 위한 삶으로 전환하도록 하기 위해 겪는 감기와 같은 고마운 현상이다. 마치 우리 몸을 너무 혹사하면 몸살감기가 오면서 더 이상 무리하지 말고 쉬라는 경고의 현상으로 보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울증을 앓기 시작하는 중년 위기는 자신을 찾아서 인생의 의미를 실현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탄이다.”


부처는 보왕삼매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다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하셨느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맘대로 하기 어렵다. 병이 생기는 것도, 자식이 속을 썩이는 것도, 가난으로 힘들게 사는 것도… 하지만 그 일에 대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우리 삶은 해석 기술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마음의 평화도 그렇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세상을 보는 기존 가설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하고, 내게는 병이 있으면 안 되고, 우리 자식들만 잘나가야 하고 등등… 그래서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길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Why me?’다. 즉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묻는다. 난 ‘Why me?’ 대신 ‘Why not me?’라고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비슷비슷한 일은 일어난다. 부자라고, 지위가 높다고 병이 안 오는 건 아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늘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나한테도 언제든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는 것이다. 그게 사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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