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강의를 시작하던 때는 파워포인트가 신(新)문물이었다. 그럼 그 전엔 뭘로 강의를 했느냐고? 그때는 OHP라는 게 있었다! 이걸 알아들으면 연식이 좀 되신 분들이다. 하하… 물론 소수지만 예나 지금이나 칠판 하나로 멋진 강의를 하는 분들도 있긴 하다. 대개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빔을 통해 쏘아지기 시작하자, 기존 방식은 빠르게 사라졌다. 다른 혁신이 그런 것처럼,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정갈한 서체와 세련된 레이아웃, 주의를 집중시키는 사진, 날아가고 사라지는 애니메이션 효과까지. 파워포인트의 기능은 배울수록 오묘했고, 이걸 잘 다루는 게 실력으로 통했다. 나도 강의 준비를 할 때면 파워포인트부터 만들었다. 폰트를 조정하고, 헤드라인을 통일시키고, 시각 효과를 넣으며 공들이다 보면 시간이 꽤 들었다. 강의 내용을 고민하는 것보다 강의 자료를 만드는 데 시간을 더 쓰기 딱 좋았다. 이걸 학문적으로 파고든 사람이 예일대의 에드워드 터프티 교수였다. 그는 논문 <파워포인트의 인지적 스타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분석이 인과관계적이고 변수가 많으며, 상호 비교적이고, 근거를 필요로 하고, 상세할수록 글머리 기호로 된 목록은 더욱더 해롭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이 논문을 읽자마자 깊이 공감한 나머지 아마존에서 파워포인트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대신 채택한 것은 최대 6페이지의 내러티브다. 발표 내용을 논리적인 글로 쓰게 한 것이다. 아마존 회의에서는 첫 20분 동안 으스스한 침묵이 흐른다. 참석자들이 먼저 6페이지짜리 문서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 조용히 내러티브를 읽고 나서야 토론을 시작한다. 글은 연결고리를 설명할 수밖에 없고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듣는 속도보다 읽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발표를 듣는 것보다 시간도 절약한다. 그들은 2004년에 파워포인트를 몰아내기로 결정하고 한 번도 후퇴하지 않았다. 파워포인트 강의 내용을 논리적인 글로 옮겨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개념을 내세우고 설명하고, 사례나 스토리로 보충해야 한다. 단 한 문장도 거저 주어지는 법이 없다. 몰입하여 쓰고 여러 번 읽으면서 말이 되는지 점검하고 계속 고쳐 써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어준다. 주제가 어려운가 쉬운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려운 주제라도 논리적이고 균형 잡힌 글은 독자로 하여금 ‘아하!’하는 불이 들어오는 순간을 만들어 준다. 글쓰기는 우리의 사고를 단련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다만 시작하기가 어렵다. 나 역시 글을 시작할 때면 컴퓨터 빈 문서에 커서가 깜빡깜빡할 때의 막막함과 머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 자기 의심을 늘 맞닥뜨린다. 다만 이제는 그런 느낌을 대면하는 게 글이 써지는 한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안다고 쉬워지는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 글쓰기 시작할 때의 막막함과 공포를 느낀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과정을 건너뛰고는 똑똑한 글이 생산되기 어렵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