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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인가? 코엑스 별마당에서 신간 발표 후 공개 강연을 했다. 저녁 시간이고 너무 오픈된 곳이라 어수선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강의라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앞에는 도무지 책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어르신 몇 분이 앉아있었다. 강연을 들으러 온 것인지, 아니면 그냥 습관적으로 앉아 있는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그래도 시간이 되어 강연을 시작했다. 뒤쪽에 낯익은 얼굴도 있고 눈을 반짝이며 듣는 사람들이 많아 안심됐다.

그럭저럭 강연을 끝냈는데 몇몇 사람들이 사인을 받는다며 줄을 섰고 난 성의껏 사인을 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수줍은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한다. “제가요, 자그마한 독서토론회를 운영하는데 한번 와 주실 수 있나요?” 그냥 보기에도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고 딴에는 아주 힘들게 얘기를 꺼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예스”라고 답했고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 사람이 유지윤 씨고, 닉네임이 ‘꼬알여사’다. ‘꼬집어 알려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얼마 후 그녀가 참여하는 하이책이란 독서 모임에 갔는데 사람들의 열의가 장난이 아니었다. 내 책을 몇 권씩 읽고 질문을 몇 개씩 준비했고 난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하면 됐다. 난 그날 참 많은 걸 느꼈다.

난 그동안 기업 강연만 했다. 일반인 대상 강의는 신간이 나올 때만 하고 거의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디 가면 강의를 들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하면 “제 강의는 듣기 어려운데. 전 주로 기업 대상으로만 강의하거든요”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교만했다. 내가 뭐 대단한 존재라고. 그런데 내 책을 읽고 온 사람들과의 대화는 질이 달랐다.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고, 뭔가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고, 내게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뭐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들이 뭔가 깨닫거나,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빛나는 눈을 잊을 수 없었다.

난 그날 꼬알여사와 의기투합했다. 같이 독서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이미 그 동네에 네트워크가 있는 그녀가 사람을 모으고 주말을 이용해 독서 토론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책엄세’를 시작했다. ‘책 읽는 엄마가 세상을 바꾼다’를 줄인 말이다. 이름은 내가 정했는데 세상의 중심은 엄마란 생각에서다. 엄마가 바뀌면 애가 바뀌고, 남편을 바꿀 수 있다. 또 요즘 엄마들은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 변화에 대한 욕구가 남자들보다 강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다 책사세를 만들었다. 책 읽기가 어느 수준 이상이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책을 읽는 과정이다. 역사, 지리에 관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책을 내가 선정해 공부하는 모임이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게 하고 싶어 글사세를 만들었다. 글 쓰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의 줄인 말이다.

이 모든 모임의 중심에 꼬알여사가 있었다. 그녀는 변화에 대한 욕구가 누구보다 강했다. 오랫동안 주부로만 살다가 자기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녀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를 잘 엮어 이런 모임을 만들었다. 책엄세 멤버들이 거의 다 글사세로 왔고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난 감동했다. 웃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했다.

사실 꼬알여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평생 나와는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는 세상이 너무 다르다. 나이 차이도 크고, 성별도 다르고, 사는 동네도 다르다. 멍게와 자벌레 같은 존재다. 하지만 난 이들을 만나면서 큰 기쁨을 느끼고 있다. 내가 살아있음을, 내가 필요한 존재가 되어감을 느낀다. 이들이 내게 무언가를 배우러 왔지만 사실 내가 그들을 통해 더 많은 걸 배운다. 내 삶이 충만해짐을 느낀다.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난 진심이 있는 만남에서 행복을 느낀다. 글사세는 글을 통해 만나는 모임이다. 이들이 글을 통해 자기 삶을 얘기했다. 남편 얘기, 애 얘기, 무엇보다 자기 생각을 다 털어놓았다. 그냥 얼굴만 아는 모임과 마음 문을 열고 만나는 모임은 느낌이 다르다. 서로를 아는 상태에서 만나면 스파크가 튄다. 만남이 행복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요즘 이 만남은 내게 새로운 경험이다. 새로운 행복이다.

“만남은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각자의 성을 열고 바깥으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진정한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갇혀 있는 성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인간적인 만남의 장은 언제나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의 말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