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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시를 읽는 경영자를 만났다. 시인과, 그 시인을 좋아하는 벗, 그와 함께 얘기를 나누며 생각했다. 그걸 뜻밖이라 생각한 내가 문제였구나! 큰 기업의 경영자로 바쁘게 지내지만 늘 시를 읽는다는 그 이의 심성이 아무 설명 없이, 그냥 가슴으로 느껴졌다.

경영자가 시를 읽을 때
시인의 예민한 감성으로 빚어낸 시를 읽으면 삶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더 슬프게, 더 아름답게, 때로 더 격렬하게. 아름다움은 처연한 현실의 뒷면과 같아서, 잔혹하거나 섭섭하거나 괴로운 일의 끝에 마주치는 울림. 예쁘기만 한 것은 인조 꽃 같은 것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시를 읽는 시간은 겸손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지구에 아주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일 뿐인 우리에게 연민과 사랑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경영자들이 시를 곁에 두고 자주 읽었으면 좋겠다. 성취 지향적인 사람에게 불안은 숙명과 같다. 이루지 못할까, 실패할까, 주위를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과 평생 동거해야 한다. 그래서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는 기술이 필요하다. 달라이 라마는 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하고 순수한 동기를 지니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러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고 노력한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진실하고 순수한 동기, 자비와 존경을 바탕으로 남을 돕는 동기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의 목적을 깊이 생각할 때, 우리가 종국에 지구에 남길 보잘것없는 흔적의 크기를 깨달을 때, 타인의 존엄을 느낄 때 그런 동기를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번잡하기 쉬운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숙제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 실용적이지 않은 일, 이를 테면 시를 읽는다든가 음악을 들으며 영감을 얻을 시간. 글을 쓰며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 그러면 조금은 겸손해 질 것이다. 경영자들, 리더들, 교육자들은 상대를 계몽하려는 자세를 늘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바쁘고 마음이 조급할수록 호흡도 짧아지고 타인을 자기식대로 판단하여 비판하게 된다. 이 가을, 약속을 줄이고 떠들썩한 모임에 나가는 일도 좀 줄이고, 혼자 만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곡식이 익듯이 조금이라도 익어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세계 과학계의 스타였던 아인슈타인이 나치가 강성해진 독일을 떠나기로 하자, 유럽과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앞다투어 그를 모셔가려고 유치 경쟁에 나섰다. 아인슈타인은 유명 대학을 모두 마다하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로 갔는데, 거기서 내건 조건은 이랬다. 프린스턴이라는 자연환경에서 살며 대도시의 혼잡함에서 벗어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수도원 같은 연구소’, 종신 교수직을 제공하되 학생 가르치는 일을 면제해주어 평생 자유롭게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약속한다고. 세기의 천재에게 그보다 더 현명한 제안이 없었다. 이후 그 전통을 고수한 IAS는 33명의 노벨상 수상자, 38명의 필즈상(최고의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적 진보를 이룩했다. 
과학자만이 아니라 경영자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외로운 일이기도 하다. 수많은 회의와 약속, 할 일로 꽉 채워졌던 일상에 막상 빈 시간이 주어지면 공허함이 느껴지고, 무용한 사람이 된 느낌이라고도 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 마주한 자신이 어쩌면 진정한 나일 수도 있는데, 그게 낯선 것이다. 혼자는 외로운 것이다. 그러나 결국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보면 어떤가. 이 가을,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를 한 번 읽어보면서.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는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