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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대충 알 수 있다. 누구나 한 두 권 정도의 베스트셀러를 쓸 수는 있지만 꾸준히 이런 일을 하는 건 쉽지 않다. 재능을 가진 것과 그 재능을 갈고 닦아 직업으로 하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장편소설을 쓸 때 하루에 200자 원고지로 20매씩만 규칙적으로 쓴다는 대목이다. 시상이 떠올라도 더 이상 쓰지 않고 딱 거기서 멈춘다는 것이다. 반대로 잘 안 된다 싶어도 어떻게 20매까지는 쓴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던지,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 던지 하면 규칙이 깨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지키려고 합니다. 타임 카드를 찍듯 하루에 정확하게 20매를 씁니다. 장편소설을 쓰는 데는 1년가량의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머릿속에 담고 1년을 살아가려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라톤을 뛸 때 아무리 힘들어도 왼발과 오른발을 규칙적으로 내뻗어야 하는 것처럼, 또 초반에 아무리 힘이 있어도 너무 무리하면 안 되는 것처럼, 장편소설을 쓰는 과정도 규칙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는 비결은 바로 페이스조절인 것이다.

글쓰기 뿐 아니라 강의에도 페이스조절이 중요하다. 톤을 조절해야 한다. 처음에는 가능하면 낮은 톤으로 말도 천천히 해야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속도도 내고 톤도 올려야 한다. 강조할 때 강조하고, 목소리를 높일 때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나중에는 감당하지 못한다. 높은 산을 오를 때도 그렇다. 욕심이 앞서 빨리 걸으면 숨이 차 걸을 수 없다. 높은 산을 보면서 걸으면 쉽게 지친다. 최선은 멀리 보지 않고 땅만 쳐다보며 걷는 것이다. 시야를 좁게 하면 경사는 그다지 가파르지 않게 느껴진다.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도 최선은 기어를 가볍게 놓고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오르는 것이다. 혈기왕성한 아이들은 멀리서부터 속력을 내다 가속도를 이용해 언덕을 오른다.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정상까지 오르긴 어려워 대부분 탈락한다. 사장을 목표로 죽기살기로 일한 친구 중 사장된 사람이 별로 없다. 오히려 그런 생각 없이 꾸준히 한 사람이 사장될 확률이 높다. 모든 일의 핵심 중 하나는 페이스를 잘 지키는 것이다.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는 것이다. 

뭐든 갑작스런 것은 좋지 않다. 갑자기 운동하고 다이어트 해서 뺀 살은 얼마 후 원위치가 된다. 효과가 단기적이고 원래 상태보다 나빠질 확률이 높다. 갑자기 부자가 된 벼락 부자도 그렇다. 이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쏟아져 들어온 돈을 감당하지 못한다. 형제간 싸움이 나고, 자식들은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고, 본인은 이혼하고, 엉뚱한 곳에 투자했다 말아먹고… 수없이 들은 얘기들이다. 벼락치기 공부도 효과는 없다. 평소에 책 한번 들여다보지 않다 시험 전날 갑자기 집어넣은 지식이 내 지식이 될 수는 없다. 시험을 본 후 그대로 반납이다. 

난 내 속도로 살고 싶다. 내 페이스대로 살고 싶다. 매일 아침 서너 시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과 운동, 일주일에 세 번쯤 강의하는 것, 필요한 사람을 만나 코칭하고 자문하는 것 그 정도가 딱 좋다. 분수에 넘치게 유명해지는 것은 사절이다. 책 내용이 별로인데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불편하다. 난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하면서 내 실력만큼 살고 싶다. 제일 두려운 건 갑자기 뜨는 것이다. 뜬다는 것은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는 것이고 조만간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뜨는 것보다는 내 힘으로 날고 싶다. 날기 위해서는 날개를 만들어야 하고, 날갯짓을 위한 근육을 키워야 하는데 이는 평생에 두고 할 일이다. 여러분은 날려고 하는가, 아니면 뜨고 싶은가? 근데 날개는 있는가, 날개 짓을 할 수 있는 근육은 만들어져 있는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