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 좁은 공간에서 운전은 피곤한 일이지만 자동차라는 독특한 공간 때문인지 나는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다. 두 아이가 어렸을 때는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놀이를 많이 했다. 끝말 잇기나 3 6 9게임, 스무고개는 기본이고, 황금색 마티즈가 몇 대 지나갈지 맞추기 등 우리만의 게임을 발명하기도 했다. 집에 오면 뿔뿔이 흩어져도 차에 함께 타 있는 동안에는 대화의 밀도가 높아졌다. 공간이 좁아서, 주의를 다른 데 돌릴 수 없어서였는지 모른다. 운전 경력 25년, 차 안에서 공부도 했고 영어도 하고, 새 음악과 예전 음악을 들었다. 음악이 없는 차란, 나에겐 상상할 수 없다. 낯선 곳을 헤맬 때도 쏟아지는 빗속을 갈 때도 그 공간이 안심감을 주었다. 차에서 대화도 했고 친구들을 실어 날랐다. 그 중엔 이상하게 항상 내가 차로 모셔오고 모셔다 드리는 관행이 자리잡게 되는 친구가 있다. 전생에 내가 친구의 가마꾼이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하하. 정말 여기 있습니까? 차 안에서는 이렇게 밀도가 높은데, 더 쾌적하게 더 잘 설계되었다는 공간에서 왜 우리는 더 산만해질까? 예를 들어 집의 거실이나 회사의 회의실이 대표적이다. 거실에서 오손도손 대화하는 가족도 있겠지만 대부분 TV를 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 건성으로 대화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잘 놓친다.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함께 둘러앉아 음식을 먹을 때가 몰입도가 높다고 해야 할까? 회사는 더하다. 우리는 요즘 주 52시간제 등의 여파로, 회의 생산성이나 회의 문화 개선을 위한 팀 코칭을 자주 요청 받고 있다. 팀 코칭을 시작할 때, 나는 제일 먼저 “여러분 지금 여기 있는 거 맞습니까?”라고 질문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몸은 와 있지만 마음은 거기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의 출석 체크부터 해야 한다. 자료를 공유할 때도 화면에 띄워놓고 담당자가 쭉 설명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청중이 선택적으로 듣는 한 이는 효과가 전혀 없다. 나는 한 팀에서, 회의에 앞서 참가자들이 이해해야 할 자료를 나눠주고 3분간 각자 읽는 시간을 주었다. 동시에 몰입해서 읽으니 이해도가 높았고, 바로 토론으로 이어졌다. 10분간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이었다. 들인 시간도 짧았다. 참가자들이 주제를 이해하는 과업을 스스로 책임졌기 때문이다. 온전히 함께 있는 것(Being fully present)의 파워 온전히 함께 있는 것의 파워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교감도, 몰입도 거기에서 나온다. 대부분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한 가지는, 자신이 상대와 온전히 함께 있지 못하는 원인이 바빠서거나 성격이 급해서라는 것이다.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함께 존재하고 몰입하는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훈련의 결과다. 머리 속의 아젠다를 비우는 능력, 온전히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 산만성을 극복하는 능력, 이 모든 것에 훈련이 필요하다. 얼마전 굉장히 산만한 장소에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인 데다가, 상대방도 이어지는 일정 때문에 조급한 마음에 집중을 못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는 겉돌거나 형식적이 되기 쉽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 즉 조급하고 산만한 에너지와 대화가 피상적이 될 것 같은 걱정을 솔직히 얘기했다. 대화에 진정성을 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젠 차 안에서도 예전과 같은 몰입은 힘들어졌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실시간 소통과 즉시성, 멀티테스킹이 가능해지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점점 더 산만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 희귀하고 더 가치 있는 재능이 될 것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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