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회사에 있을 때는 회사 브랜드로 살아간다. 회사를 등에 업고 그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하면 된다. 근데 회사를 나오는 순간 그게 사라진다. 명함이 사라지면서 자신을 증명할 게 없다. 정체성이 사라진다. 그럼 자신을 알릴 방법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에 대해 알기 어렵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전문성이 있고 통찰력이 있어도 활용할 방법이 없다. 그게 가장 두려운 것이다. 이를 해소할 최선의 방법은 바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다. 수 년 전 L 그룹 해외지사장 교육을 간 적이 있다. 강의 중 책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끝난 후 중국에서 7년을 일했다는 지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자신은 맨땅에 헤딩을 하며 중국 소비자 시장을 알았고 전문가가 됐고 앞으로도 이쪽 방면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회사에서 다른 나라를 맡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조언을 하겠는가? 난 중국관련 책을 하나 쓰고 결과를 보자고 했다. 그 분은 몇 달 만에 “차이나 마켓 코드”란 책을 썼고 제법 팔렸다. 이후 그에게는 신상의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관련 강의가 들어왔고, 중국관련 사업을 하는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하다가 얼마 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후에는 중국인과 합작으로 회사를 만들어 운영을 했고 잘 되자 이를 팔고 나왔다. 최근에는 모 기업의 중국관련 자문을 해 주면서 오너와 친해져 그 회사의 사외이사로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회사의 중국관련 일을 한단다. 틈틈이 중국관련 자문도 하고 강연도 한다. 어떠냐는 내 질문에 자신이 사외이사로서 받는 월급만으로도 이전 대기업에서 받는 월급보다 많단다.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무척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책을 쓴 것이라는 말도 한다. 또 다른 사례이다. 내 친구 김익환은 소프트웨어 전문가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친 후 스탠포드에서 IT로 석사를 한 후 실리콘밸리에서 20년 이상 직원으로 또 오너로 소프트웨어 관련 업무를 했다. 그러다 한국에 왔는데 나를 만날 때마다 한국 IT산업의 후진성을 개탄했다. 난 그쪽에는 지식도 없고 할 말도 없었다. 난 무심코 나한테 이런 얘기하지 말고 IT관련 책을 써보라고 했다. 책으로 비판도 하고 대안도 제시하라고 했다. 얼마 후 그는 '한국에는 소프트웨어가 없다'란 책을 썼다. 근데 며칠 후 내가 자문하는 IT회사 사장이 이 책을 들고 와 내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있네요”라고 하면서 놀라워한다. 내 친구라고 얘기하자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후에도 그 친구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모든 것'이란 책도 썼다. 그러면서 점점 한국 내에서 브랜드를 높였다. 자문을 해 달라는 회사는 많은데 자기는 한꺼번에 두 개 이상은 하지 않는단다. 참 멋지게 사는 친구이다. 이 친구 역시 책 쓴 일을 자랑스러워한다. 책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고백한다. 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썼다. 자기계발 책도 쓰고, 몸 관련 책도 쓰고, 리더십 책도 썼다. 근데 이상하게 인사관련 책을 몇 권 썼다. “채용이 전부다”와 “면접의 힘”이 그것이다. 그 분야를 잘 알아서 라기 보다 관심이 갔기 때문에 쓴 것이다. 일단 그 분야에 관심도 많고 문제의식이 컸다. 인사 부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왜 인사를 저렇게 하는가, 이상적인 인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사람을 잘 뽑는 것이 왜 중요한지, 잘 뽑기 위해서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같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예전 다니던 회사가 인사상의 난맥 때문에 무너졌다는 생각도 일조를 했다. 그러면서 관련한 책이나 칼럼을 엄청 읽었다. 전문가를 만나면 당연히 채용이나 면접 관련 질문을 던지고 열심히 경청했다. 늘 관련해 생각하니까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정리된 생각을 조금씩 글로 쓰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두 권의 책이다. 얼마 전에는 제법 큰 바이오회사 회장님이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한다. 최근 회사가 커지면서 인사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던 차에 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내게 여러 질문을 하고 내 의견도 묻는다. 나는 아는 범위 내에서 답변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그 회사에서 몇 번의 강의를 하게 되고, 자문도 부탁 받게 되었다. 지금도 계속 그 회사와는 인연이 있다. 모두 내가 쓴 책 덕분이다. 책 덕분에 전문성을 인정받았고 그 결과 일거리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소개할 때 명함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명함만으로 신뢰가 생기지는 않는다. 만약 책을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서로에 대해 훨씬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책은 최고의 자기소개서이다. 세상에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가장 확실한 무기는 전문성이다. 전문가만이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전문가가 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책을 쓰는 것이다. 전문가가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책은 최고의 자기소개서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