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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싫어하는 드라마가 있다. 격차가 나는 결혼에 반대하는 드라마이다. 너무 뻔하고 지루하다. 대부분 한쪽은 엄청 부자고 다른 쪽은 엄청 가난하다. 둘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나중에 이를 알게 된 부모가 반대를 한다. 반대를 해도 보통 반대가 아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추악한 방법을 동원해 상대를 괴롭힌다. 남자 쪽이 잘 사는 경우는 남자 쪽 엄마가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학대를 한다. 몰래 만나 협박도 하고, 돈을 쥐어주기도 한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물도 끼얹고, 귀싸대기도 때린다. 급기야 여자 쪽 집까지 찾아가 여자 부모를 만나 이 결혼 절대반대라는 얘기까지 한다. 자식결혼이 아니라 본인 결혼이다. 그 여자에게 아들 결혼만큼 중요한 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근데 결혼할 여자는 너무 착하고 순수하다. 대들지도 않고 자신이 당한 얘기를 남자에게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대부분 혼자 끙끙 앓는다. 왜 그런 얘기를 안 하는지, 그게 멋지다고 생각하는지 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간혹 아무 얘기 없이 남자와의 연락을 끊거나 사라진다. 자기학대 증세인 것 같다. 남자는 대부분 눈치가 없거나 멍청하다. 자기 엄마가 그런 사람이란 걸 모르는 건지,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지 모르겠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남자는 여자를 찾아 전국을 헤맨다. 여기서 남자들은 대개 직장이 없거나, 있더라도 아버지 회사의 기획실장이라 며칠 빠져도 지장이 없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오직 여자 관련 일에 올인 한다. 살아생전 나도 이렇게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다 뭔가 사건사고가 터진다. 교통사고가 주로 나고 여자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남자는 수술실 앞에서 울고 난리를 치면서 그녀가 다시 깨어나길 기도한다. 여자가 죽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건강을 되찾거나 간혹 기억상실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일을 겪으면서 남자의 엄마가 갑자기 착해진다. 드라마가 끝나가는 신호다. 둘의 결혼을 허락하고 결혼식을 하면서 드라마는 행복하게 끝난다. 난 이때 늘 궁금한 게 있다. 그렇게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 이후의 스토리다. 그렇게 상처를 많이 받은 여자는 시댁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게 될까? 그래도 결혼을 허락해줘서 고맙다고 생각할까? 그렇게 반대하던 여자를 며느리로 받았는데 사랑이 새록새록 생길까? 고부간 관계는 어떨까? 난 두 사람 사이의 결혼이 원만하지 않을 거라는 것에 한 표를 던진다.

성균관대 김범준 교수는 통계물리학이 전공인데 이를 사회학에 응용해 재미난 분석을 한다. 이런 실험이다. 100명쯤 되는 조직에서 좋아하는 사람 5명, 싫어하는 사람 5명을 고르게 한 후 그 데이터를 갖고 여러 분석을 한다. 결과는 대충 이렇다. 대부분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이 조직 안에 5명쯤 있다. 그 중 어떤 이는 80%의 사람이 싫어한다. 거의 모든 이가 그를 싫어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5년 후 같은 집단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좋아하던 사람을 싫어하게 된 경우는 5명쯤 있었는데 반대로 싫어하던 사람과 관계가 개선된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친구는 적이 될 수 있지만, 적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난 이 실험에 동의한다. 친한 친구끼리 사업을 하다 적이 되는 경우는 제법 있다. 근데 조직 내에서 서로 미워하다 친구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어떤 이유건 한번 싫은 건 싫은 것이다. 싫은 사람이 좋아지는 건 아주 드문 경우이다. 

여러분의 인맥은 어떤가? 친구 숫자 대신 적의 숫자를 헤아린 적은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적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친구보다 적이다. 친구 덕분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적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는 많다. 누군가의 성공을 도와주기는 어렵지만 끌어내리기는 쉬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할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할 수는 있다. 좋은 인맥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의 숫자를 줄이는 일이다. 일반 조직에서도 그런데 가정에서야 오죽하겠는가? 며느리나 사위는 우리 집에 새로 참여하게 된 새 가족이다. 이들에게 정말 잘 해야 한다. 한번 어긋난 감정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친구는 적이 될 수 있지만 한번 적은 영원한 적이라는 실험 결과를 되새겨보라. 자식 결혼에 목숨 걸고 반대하는 부모들이 제법 있다. 그럴 수 있다. 근데 반대를 해도 정도껏 하길 권한다. 그렇게 목숨 걸고 반대를 하다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칫하면 자식 집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자칫하면 영원히 손자를 품에 안아보지 못하고 살 수도 있다. 적을 만들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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