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성 코칭 클래스에서 어떤 고객이 내어놓은 주제를 놓고 여러 코치들과 함께 시각의 전환을 일으키는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고객이 제시한 주제는 다음과 같다. “제가 길을 가는데 큰 산에 가로막혔습니다. 코치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코치들은 여러 가지 질문들을 내놓았다. “당신이 길을 가는데 큰 산에 가로막혔다고 했는데, 그럴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당신의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인가요?” “왜 그 길을 가시나요?” “큰 산에 가로막혔다고 했는데, 당신이 말한 큰 산은 무슨 의미인가요?” “큰 산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 너머에는 또 무엇이 있나요?” “당신의 삶에서 길은 무엇이고 산은 무엇인가요?” “원하는 곳까지 가는 데에 큰 산이 몇 개나 더 있을까요?” “그 큰 산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그 큰 산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구름 위에서 그 큰 산을 보면 어떻게 보이나요?” “가는 길 중 얼마나(몇 %) 왔나요? 얼마나 남았나요?” “그 곳에 도달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무엇이 보이나요? 무엇이 들리나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항상 산 너머에는 뭔가가 있다. 뭔가에 대한 동경이 서려있다. 정호승 시인은 ‘미안하다’라는 시에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주제를 내놓은 고객의 말을 얼핏 들으면 길을 가는 데 있는 큰 산을 장애물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큰 산 너머에 대한 동경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문제에 부딪치면 해결할 방도가 생기고 해결할 방도를 찾은 후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게 우리네 삶인 것 같다. 이런 우리 삶에서 문제를 풀려고 하기 보다는 문제를 아예 기회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코칭의 효과가 아닐까? 코칭을 시작할 때 고객은 어려움이나 문제를 얘기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통해 이루고 싶은 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한 어떤 기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길과 산 너머에서 실제로 만나고 싶은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꽃길이든 흙탕길이든 산길이든 그 길을 지나고 나면 성장한 자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 길들은 여러 가지 기회를 제공하는 통로인 것이다. 스티브잡스도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을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사건임과 동시에 가장 창조적인 사건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큰 산은 큰 창조적 기회인 셈이다. 이 주제를 제시한 고객은 결국 자기가 말한 큰 산을 통해 자기 성장을 위한 큰 기회를 발견하고 기뻐하고 미안해하고 감사하며 코칭을 마무리했다. 나는 ‘길을 가는데 큰 산이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 자체도 아예 없이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암울하고, 외롭고, 배고프고 춥고, 밤마다 들렸던 ‘딱쿵’ 총소리의 공포는 본능적인 생존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길’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내 나이 70이 훌쩍 넘어 홀로 그곳을 다시 가보니 동네 어구에서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상처 받은 그때의 어린아이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아이가 생존을 위해 60년 넘게 큰 산을 넘을 때마다 찾아내고 쌓아놓은 많은 리소스가 그 아이 주변에 보물처럼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내안의 리소스 창고에 그대로 쌓여있다.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리소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리소스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향은 이러한 이치를 알려주는 가장 순수한 곳인 것 같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항상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상처 받은 내면의 어린아이에게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조용히 겪어온 내 삶에게도 축복을 전해주고 싶다. 오늘은 길을 가다가 새삼스럽게 큰 산에 가로 막혀 고민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성스러운 의식(Holy Ritual)으로 축복을 보내고 싶다.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은 축복할 일이다. 가는 길에서 큰 산을 만나는 것은 더욱 큰 축복의 통로를 만나는 것이다. 그곳을 지나면 더 깊어진 큰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니까. * 칼럼에 대한 회신은 7hspark@naver.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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