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최근 주변에 회사를 그만두는 지인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은 다니지만 조만간 그만 두어야 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 애가 아직 어린데 권고사직을 받은 사람도 있다. 본인도 답답하지만 주변 사람들도 답답하다. 누구에게나 미래 문제는 중요한 이슈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문제점에 대해 얘기하길 거부한다. 마치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재수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퇴사란 단어를 싫어하고, 퇴사 후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명예퇴직이 현실문제가 되면 조언을 구한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면 좋겠느냐, 요즘 어떤 업종이 잘 되느냐, 이런 일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묻는다. 난 거꾸로 무엇을 잘하는지, 주특기가 무엇인, 그 동안 어떤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는지, 어떤 일을 할 때 신이 나는지 묻는다. 대부분은 이런 질문에 당황한다. 뚜렷한 주특기, 성과, 신이 나는 일 모두 잘 모르겠단다. 하지만 성실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맡겨만 주면 잘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난 이들을 볼 때마다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묻고 싶은 게 많다. 우선, 그 동안 무얼 했는지 묻고 싶다. 20여년 이상 직장생활을 했는데 그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냈는지 묻고 싶다. 지금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란 격언이 생각난다. 둘째, 이들에게 직장이 어떤 곳인지 묻고 싶다. 직장이란 곳이 여러분 인생을 책임져 주는 곳인가, 아무런 가치를 내지 않아도 계속 다닐 수 있는 곳인가? 그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뭔가를 배웠을 것 아닌가? 서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그 엄청난 시간 동안 뚜렷이 잘하는 게 없다는 게 말이 되는지 물어보고 싶다. 셋째,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유능해도 70까지 다닐 수는 없다. 꿈의 직장도 60이면 끝이고 사기업은 50부터 눈치를 봐야 한다.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 이런 일에 대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이들의 심정은 이렇다. “쓸데없이 미래 일로 걱정하지 말자. 지금 일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그때 일은 닥쳐서 하자. 뭔 수가 생기겠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게 진리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근면하면 살아남고 게으르면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한자를 보자. 근면 勤勉의 勤은 진흙 근堇 플러스 힘 력 力이다. 힘쓸 면 勉은 면할 免 플러스 힘력이다. 두 개 다 힘 력자가 들어있다. 힘을 써서 열심히 살면 고생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면의 반대말은 무사안일 無事安逸이다. 아무 일 안하고 편안하게 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는 일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뭔가 생각을 하면서 20년 넘게 직장을 다녔다면 엄청난 지식과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당연한 사실이다. 오래 다녔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무얼 잘하는지 모른다는 건 그만큼 게을렀다는 반증이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고백이다. 직장을 잡은 것에 만족해 이후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게으름은 회피이다. 할 일을 뒤로 미루고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물은 변명이다. 변명은 게으른 사람들의 전유물이자 최고의 무기다. 결과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라는 말이다. 게으름에 대한 하늘의 보복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실패요, 또 다른 하나는 그가 하지 않은 일을 한 옆 사람의 성공이다.
나이가 들수록 힘이 필요하다. 근력이 중요하다. 근데 힘은 어떻게 해야 생길까? 힘은 힘을 써야 생긴다. 힘을 쓰지 않으면 힘은 생기지 않는다. 근면이란 글자는 힘을 써서 부지런히 노력하면 진흙탕을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로 난 해석한다. 반대로 게으름을 피우면 계속 진흙탕 속을 헤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근면의 심볼이다. 그의 아들 정몽구 회장의 좌우명 역시 일근천하무난사 一勤天下無難事이다.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세상일에 어려움은 없다는 말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