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진화 발전할까? 나는 그 동안 어떻게 변화했을까?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괜찮을까? 가장 이상적인 발전의 프로세스는 뭘까? 발전의 첫 단계는 아는 것이다. 知識의 지知가 있어야 한다. 근데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아는 것의 정의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표현할 수 없는 건 아는 것이 아니다. 표현은 주로 말과 글을 통해 이루어진다. 지식의 지는 화살 시矢 플러스 입 구口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고 나는 해석한다. 일 잘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막힘 없이 줄줄 얘기한다는 점이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의 핵심은 뭐고, 앞으로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될 것이고, 이런 부분을 도와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고… 얘기를 들으면서 머리가 맑아진다. 그가 하는 일을 그림처럼 그릴 수 있다. 반면 일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자꾸 나중에 보고서로 제출하겠다고 미룬다. 난 그럴 필요 없다, 지금 말로 얘기해보라고 다그친다. 할 수 없이 설명을 하는데 뭔가 미심쩍다, 설명을 들으면서 자꾸 궁금한 것이 생기고, 저게 진실일까 의심하게 되고, 무슨 말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설명을 들을수록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지는 아는 것을 제대로 말로 설명하는 것이다. 설명하지 못하는 건 아는 것이 아니다. 둘째는 지식의 識이다. 식은 말씀 언言 플러스 진흙 시戠 혹은 새길 시이다. 말을 진흙판에 새긴다는 의미일 것이다. 글쓰기를 뜻한다. 배우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글쓰기이다. “이 조직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글을 잘 써야 합니다. 글을 쓰지 못하면 위로 올라갈 수 없어요. 중요한 건 절대 글쓰기를 남에게 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윤리규정에 어긋나지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 철학, 관점 등을 다듬고 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조직 경영진을 코칭하는 고현숙 코치가 미국에 다녀와서 내게 해 준 말이다. 안다는 것은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 글쓰기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위로 올라갈 수 없다. 근데 글은 아무나 쓸 수 없다. 아는 게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한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럼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개념이 점점 확실해진다. 강의를 하는 난 이 변화를 자주 느낀다. 관심 가진 분야를 처음엔 맛보기 삼아 설명을 한다. 처음엔 나도 긴가민가하는데 자꾸 얘기를 하면서 점점 개념이 뾰족해진다. 어느 순간 글을 쓸 수 있다. 개념이 확실하지 않아도 말은 할 수 있다. 근데 개념이 불명확하면 글은 쓸 수 없다. 지식의 두 번째는 글쓰기이다. 셋째, 見이다. 볼 견이다. 의견의 견이다. 난 자기 의견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반대로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을 보면 당황스럽다. 자기의견이 없다는 건 어떤 뜻일까?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 아무런 의문 없이 세상을 산다는 것? 그럼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아무 생각 없이 쫓아가지 않을까? 부하뇌동하고 곡학아세하고 어디서 한 가지 배우면 그게 세상의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추종하고 다른 의견 가진 사람을 배척하고 그러지 않을까? 근데 의견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배움의 결과로 얻어진다. 배움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다. 식견 識見이란 단어가 그걸 말해준다. 지식이 있어야 견해가 생긴다는 말이다. 지식이 없으면 의견이 생기지 않고 지식이 없는 의견은 자기만의 의견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가 쉽게 냄비처럼 끓었다 식었다는 반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식의 부족과 식견의 부족이다. 그러니까 별 얘기 아닌 것에도 흔들리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견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解이다. 풀 해이다. 문제를 푼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왜 배울까? 힘든 공부를 해서 왜 대학까지 가는가? 대학을 나온 후에는 왜 계속 공부를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배움의 가장 큰 성과는 문제 해결능력의 향상이다. 공부를 하면 복잡한 문제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능력이 있고 뛰어나다는 것은 결국 문제해결을 잘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다양한 종류의 문제에 직면한다.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야 한다. 지식이 늘게 되면 다양한 종류의 도구를 갖게 된다. 많은 경우의 수를 알고 해법까지 알게 된다. 당황하지 않는다. 불안하지 않다. 반면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한 두 가지 도구만을 갖게 된다. 당연히 불안하고 두렵다. 문제 같지도 않은 문제에도 걸려 넘어지고, 말이 되지 않는 사기도 당하고, 쉽게 현혹된다. 사리분별력이 약해진다. 조지 오웰이 쓴 1984란 소설을 보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생각하면 안 된다. 일기를 쓰면 안 된다. 표현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 언어의 제한이 많다. 왜 그랬을까? 표현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 그럼 바보들은 다스리기 쉽다. 이것의 역이 바로 지혜로 가는 길이다. 내가 생각하는 지혜의 발전 프로세스는 지식견해 知識見解의 네 글자이다. 아는 것을 자꾸 말로 표현하고 글로 써보고, 그런 과정에서 나름의 의견이 생기고 마지막 해법이 다양해지는 것이다. 시작은 말과 글이다. 표현이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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