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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엔 유독 사고를 많이 쳤다. 소통을 강의하는 코치로선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코치들과 미팅을 하면서 다른 코치가 발표를 하고 있는데, 손목시계를 툭툭 두드렸다. 빨리 끝내라는 표시였다. 그걸 본 해당 코치는 서둘러서 발표를 마쳤다. “제가 너무 길게 했나 봐요. 죄송해요.”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나는 그 코치보다 더 장황하게 말했다. 실제로 해당 내용을 말하다 보니, 길게 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코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기는 더 길게 말하면서 남에게만 짧게 말하라고 그래!’

그래도 이 해프닝은 큰 사고 없이 지나갔다. 정작 오후에 더 큰 일이 벌어졌다. 그룹코칭 중에 자꾸 주제를 벗어나는 말을 하는 참가자에게 면박을 줬다. 그 분은 매우 기분 나빠했다. 그럭저럭 그룹코칭은 끝났지만 내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쾌락의 불균형 이론’이 떠올랐다. 좋은 감정은 금방 잊히지만 나쁜 감정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는 게 쾌락의 불균형 이론이다. 그 분에겐 기분 나쁜 감정이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변명을 하자면, 정해진 시간에 토론을 끝내고 싶었다. 그냥 끝내는 게 아니라, 멋진 결론을 도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이 급했다. 이게 바로 함정이었다.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결국 그 내용을 실행하는 건 사람이라는 걸 망각한 것이다. 급한 마음에 운동화 끈도 묶지 않고 달리려고 했다. 어떤 근사한 결론도 그걸 실행할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무용지물이라는 걸 간과했던 거다.

며칠 후에 또 사고를 쳤다. 강의를 하는데 참가자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실제로 엉뚱한 질문이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그 상황에선 그렇게 생각했다. 그 참가자의 질문을 무시해버렸다. 그 순간부터 그 참가자는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강의를 전혀 듣지 않았다. 어떤 경우라도 참가자의 질문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걸 스스로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터라 어이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 순간 나는 똥개에 불과했다. 개에게 공을 던지면 개는 그 공을 쫒아가서 물어온다. 그러나 사자에게 공을 던지면 사자는 공을 쫒아가는 게 아니라, 공을 던진 사람을 향해 덤벼든다. 문제의 본질을 잊지 말라는 교훈이다. 어떤 문제가 주어지면 그 문제를 쫒아가지 말고, 그 문제의 본질과 그 문제를 감당해야 할 사람을 먼저 보라는 뜻이다.

얼마 전에 TV에서 ‘남궁인’이라는 의사가 말했다. “말은 인공호흡입니다.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다. 메모까지 해가면서 외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보다 더 강렬했다. ‘입술에 30초가 가슴에 30년’이라는 말이 있다. 강의 때 가끔 인용하는 말이다. 실제로 20여 년 전에 선배에게 들은 한 마디가 내 가슴에 비수처럼 남아 있다. 이번 일들을 통해 비싼 수업료를 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내 직업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기도 지키지 못하는 걸 남에게 가르칠 순 없는 일 아니겠는가?

직급이 높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직원들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성격이 급해서 화를 잘 낸다’는 거다. 그러나 알면서도 잘 안 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내심으론 화를 내도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화를 내는 거다. 이들은 상사에겐 화를 내지 않는다. 자신에게 돌아올 결과를 잘 알기 때문이다. 30층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면 뛰어내리겠는가? 절대로 뛰어내리지 않을 거다. 결과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2층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면 어떨까? 망설일 거다. 잘하면 하나도 안 다칠 수 있고 다치더라도 중상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는 데도 실천이 잘 안 된다는 건 맞는 말이 아니다. 내심으론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천하지 않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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