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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폼 잡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낸다 하면서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인상을 쓰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인양 하는 사람을 참지 못한다. 난 권위적인 사람을 경멸한다. 별것도 아닌 완장을 차고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목소리를 내려 깔고 다른 사람을 우습게 보는 사람을 나 역시 우습게 본다. 갑질하는 사람을 보면 안에서 분노가 치민다. 약한 사람에게 강하고, 강한 사람 앞에서 비굴한 사람도 별로이다. 난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아마 내 안에 교만이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겸손은 실제의 자신보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겸손의 반대는 실제의 자신보다 자신을 과장하는 것이다. 백 가진 사람이 아흔 개를 얘기하면 겸손이다. 열 개 가진 사람이 열 한 개를 얘기하면 과장이다. 겸손의 전제조건은 가진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겸손이고 자시고 할 게 없다. 그런 면에서 겸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뭔가 가진 게 있어야 한다. 겸손은 절제와 통한다. 돈은 많지만 쓰지 않는 것은 겸손이고 절제이다. 돈도 없는 게 외제차를 끌고 다니면 그건 사치이고 허영이다. 아는 게 많지만 내색하지 않는 건 겸손이다. 아는 것도 없는 자가 혼자 떠들면 그건 주책이다. 실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자기를 낮추는 것은 겸손이 아닌 위선이다. 표를 얻기 위해 잠시 허리를 굽히는 게 그렇다. 겸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겸손은 한계를 알고 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겸손이란 자세를 낮추는 것이지 실력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자신을 덜 생각하고 남을 더 생각하는 것이다. 겸손은 자기 능력을 숨기고 공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겸손은 자기 안에서 빠져 나와 주변을 보고 경탄하는 것이다. 겸손은 실력에서 나온다. 깨달음에서 나온다. 실력이 있으면 남의 강점을 얘기할 수 있고 자신의 약점을 드러낼 수 있다. 실력이 없으면 자신을 숨기려 하고 상대도 떳떳하게 보지 못하고 단점만을 보려고 한다. 그걸로 자신의 단점을 덮고 싶은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겸손을 떠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겸손이 아니다. 겸손은 겸손할꺼리가 있어야 한다. 겸손해야 친절할 수 있다. 불친절은 자신없음에서 나온다. 삶이 힘들기 때문에 그냥 짜증이 나는 것이다. 자기 삶이 만족스러우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 친절이 나온다.

겸손 謙遜은 겸손할 겸에 겸손할 손이다. 겸은 말씀 언言 플러스 겸할 겸兼이다. 공손한 말과 행동을 겸해야 한다는 뜻이다. 말만 공손한 것도 안 되고 행동만 공손해도 안 된다. 겸손할 손遜은 손자 손 孫 플러스 갈 착 辶이다. 손자가 도움을 거절하고 달아난다는 뜻이다. 사양이다. 공손한 말과 행동을 하면서 도움을 사양한다는 뜻이다. 대충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영어로 겸손은 humble인데 부식토 혹은 퇴비를 뜻하는 humus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썩은 흙이지만 거꾸로 덕분에 식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이다. 겸은 주역의 지산겸에서 나왔다. 지산겸 地山謙은 땅 아래 산이 있는 형상이다. 높은 산이 낮은 땅 아래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듯 하다.

겸손이란 자기 그릇이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덜하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스스로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균형 잡힌 시각을 잃게 된다. 겸손은 그런 시각을 찾게 해준다. 큰 그림을 보게 해준다. 오만한 사람은 발전할 수 없다. 겸손한 사람만이 발전할 수 있다. “나는 최고가 아니다.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발전이 없다. 나는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고, 계속 진화할 수 있는 거다.” 초밥왕 마쓰히사 노부유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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