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릴 때 경험했던 중요한 사건이 기억나는데 그게 제가 경험한 것인지, 꿈이었는지, 혹은 책에서 본 건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억나는데, 실제 경험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 경우, 다들 한번쯤 경험해 보시지 않으셨나요? 인지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울릭 네이서(Ulric Neisser)는 평생 이런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는데요. 1992년 인지심리학이나 뇌과학 분야에서는 고전으로 불리는 실험을 발표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실험은 이랬습니다.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학생들에게 몇 개의 질문이 실린 간단한 인터뷰 설문에 답하도록 했습니다. 이 사건 소식을 어떻게 들었고,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했고,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2년 반(정확히는 32개월)이 지난 후에 이 설문에 답했던 학생들을 불러서 똑같은 인터뷰를 또 했습니다. 맞습니다. 기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죠. 예상대로 많은 학생들이 2년 반 전의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7%의 학생들만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요, 68%는 기억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25%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이 실제 질문에 답한 내용입니다. “종교 수업에 들어가 있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들어와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챌린저호가 폭발했다는 사실만 빼고 디테일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 모두 그 슬픈 사건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방으로 가서 TV를 켰고, 세세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 (원래 답변) “처음에 챌린저호 폭발 소식을 들었을 때 1학년 기숙사 방에서 친구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그건 뉴스 속보로 나왔는데,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정말 화가 났고 윗층으로 올라가 친구와 그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2년 반 후) 기억은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재미있는 장면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이렇게 다르게 대답한 학생들에게 2년 반 전의 설문지를 건네줬습니다. 흥미로운 건 자기가 완전히 다른 내용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는데도, 왜곡된 기억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글쎄요. 제 글씨체가 맞긴 한데, 제가 이렇게 답했는지 잘 모르겠군요. 이번에 답한 게 확실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후배 학자들이 이와 비슷한 실험을 이어나갔는데요. OJ 심슨 판결, 911 테러 사건 등이 일어난 후에 비슷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그 중에 전처를 살해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은 OJ 심슨 사건에 대한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3일 후, 15개월 후, 32개월 후 각각 똑같은 설문을 실시했는데요.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왜곡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15개월 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힌 응답자가 20%가 넘었는데, 32개월 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6%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을 만들고 잘못된 기억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겁니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기억을 반복해서 회고하는 게 오히려 왜곡을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챌린저호 폭발 사건이나 OJ 심슨 사건 등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자주 거론되고, 그때마다 원래 기억에 새로운 정보들을 덧붙인다는 것이지요. 이 연구의 핵심은 기억이 바뀐다는 게 아니라, 바뀐 기억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는 겁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콜라를 좋아하는 제게 ‘그 놈의 콜라 좀 마시지 말라’고 하시면서, 콜라는 뼈를 썩게 만든다는 말씀을 항상 덧붙이십니다. 콜라를 뼈에 주입하는 게 아니라 뱃속에 넣는 건데, 항상 이 말씀을 하십니다. 탄산의 쏴하는 특성이 뼈를 녹일 것 같은 이미지가 있나 봅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찾아서 몸에 좋지 않은 건 맞지만, 커피나 오렌지주스나 비슷하다고 말씀 드려도 그때뿐입니다. 다음에 또 ‘뼈를 썩게 만드는 콜라 좀 마시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시죠. 포기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어떤 사안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계시지요? 여러분의 기질, 경험과 학습, 현재 포지션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걸 겁니다. 물론 그로 인해 동료나 구성원과 견해 차이도 있으시지요? 오늘 한번쯤 나를 의심해 보는 건 어떨까요? * 칼럼에 대한 회신은 capomaru@gmail.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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