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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글로벌 기업을 거쳐 지금은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 첫 직장이 아주 좋은 곳인데 이사 때 그만 두고 이직을 했고 여기저기 일을 하다 지금에 이르렀다는 얘길 한다. 난 왜 그 직장을 그만두었는지 물었다. 잠시 머뭇머뭇하던 그는 이내 말문을 열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참 열심히 일했고 동기들보다 승진도 빨랐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시아 태평양 회장이 한국에 와 제 보스와 미팅을 하고 돌아갔지요. 전 그 분이 왜 한국에 왔는지도 몰랐는데 다음 날 보스가 제게 전화를 했어요. 저를 아태평양 사업부장으로 승진시키는 문제 때문에 왔는데 한국사장이 반대를 해서 안 됐다면서 유감이라는 내용이었어요. 이해할 수 없었지요. 

"며칠 후 고객을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조심스럽게 사장에게 그 건에 대한 이유를 물었지요. 그랬더니 너무 일찍 승진을 하는 건 좋지 않고 그런 사업부장을 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적다는 겁니다. 피가 확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결국 그 자리에는 저보다 훨씬 어리고 역량도 떨어지는 다른 외국인이 가게 되었지요. 저런 사람 밑에서는 백날 일해도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직을 결심했지요. 이미 그 사장은 밑에 사람을 안 키우는 걸로 유명했지요. 여러 이유를 들어 싹을 자르는 겁니다. 마침 다른 곳에서 오퍼가 왔고 전 이직을 했습니다. 

근데 그 건 때문에 얼마 후 사장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지요. 갑자기 이직을 하다 보니 약간 문제 있는 사람을 후임자에 앉힐 수 밖에 없었지요. 일하는 게 거칠고 윤리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지요. 얼마 후 그 친구가 사고를 치면서 그 책임으로 사장이 그만 두었지요. 그런 평판 때문인지 그 사장은 일찌감치 이 시장에서 사라졌지요. 사실 그 정도 경력이면 아직까지 일할 수 있거든요.”

난 그 분에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는지와 현재의 소감을 물었다. 그 분은 이렇게 답했다. “인생이란 그런 거 같아요. 좋은 사건 나쁜 사건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사건이 제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지요. 덕분에 저는 좀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고 여러 회사를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지요. 그렇지 않았으면 그 회사를 나올 이유가 없었고 지금은 은퇴해서 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그 사장이 제겐 은인인 셈입니다.” 

찌질한 리더일수록 밑에 직원을 키우지 않고 싹을 자른다. 그런 조직은 그 사람이 없으면 쓰러진다. 그런 사람은 그 사실을 즐긴다. 주변에서도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고 얘기하고 본인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사람 밑에서는 사람이 성장할 수 없고 조직도 발전하지 못한다. 최고의 리더는 직원을 팍팍 키우는 사람이고 성장한 부하 덕분에 떠밀려 올라가는 사람이다. 언제 그만 두어도 조직 운영에 아무 지장이 없게끔 만드는 사람이다. 욕심 때문에 늘 문제가 생긴다. 자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고, 혼자 모든 것을 다 차지하려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돈도 갖고 명예도 갖고 건강도 갖고 사랑도 갖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물도 좋고 경치도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은 없다.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를 내려 놓아야 한다. 

아시아인 최초로 듀폰의 아시아태평양 회장까지 지낸 김동수 코치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리더 중 한 사람으로 드와이트 밀러 (Dwight Miller)란 사람을 꼽는다. 당시 밀러는 공장장이고 김 회장은 부공장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가 부임하자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너 잘 왔다. 난 이제 은퇴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동안 고생했으니 모든 일을 당신에게 위임하고 난 사냥이나 하면서 편하게 지내야겠다. 그러니 이곳에서 자네 마음대로 한번 공장을 운영해보라.” 이후 몇 년 간 그는 전혀 터치하지 않았다. 사실 공장 경험도 별로 없고 자신감도 없었지만 모든 책임과 권한을 받은 만큼 소신껏 열심히 일을 했다. 그는 주기적으로 그를 만나 애로 사항에 대한 얘기를 들어주고 칭찬과 격려를 해 주는 게 전부였다. 실수한 것을 얘기하면 “그럴 수도 있다. 대신 다음엔 하지 말아라”정도 얘기를 했다. 덕분에 그는 정말 열심히 일을 했고 덕분에 입사 이후 가장 많이 성장했다. 

최고의 리더는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다. 진심으로 그 사람의 성장을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다. 김 회장은 밀러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그 사람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제가 해야 하거든요. 그 사람이 제일 잘한 일은 저를 내버려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 밑에 사람을 키우고 있는가, 아니면 모든 싹을 자르면서 영원한 일인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건 아닌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