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문제를 정확하게 풀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답을 먼저 찾은 후에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제기구에서 평생을 보낸 제리 스터닌(Jerry Sternin)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1990년 제리 스터닌은 베트남에 파견되었습니다. 아동구호 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소속으로 베트남 아이들의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죠. 베트남 정부가 요청한 일이지만 고위 공무원들은 국제기구 사람들에게 비협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6개월 사이에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가 지속되기 어려울 거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스터닌은 그간 여러 단체에서 분석한 아동 영양문제 보고서를 읽어보았는데요. 대부분 베트남의 빈곤, 열악한 위생상태, 물 공급 부족, 영양실조에 대한 무지 등을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빈곤을 퇴치하고, 위생설비를 구축하고, 상수도를 깔고, 주민들을 교육시키려면 6년으로도 부족한데, 6개월이라니…’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뾰족한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죠. 그래서 일단 시골 마을을 돌며 어머니들에게 아이들의 몸무게와 키를 조사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스터닌에게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스터닌은 영양상태를 조사하던 어머니들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가난한 집 아이들 중에도 우량아가 있었나요?” 어머니들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스터닌은 극빈층이지만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운 집을 찾아갔습니다. 몇 곳을 관찰한 결과 그들은 보통의 가정과 뚜렷하게 다른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가정은 하루 두 끼를 먹였지만, 우량아를 키운 집은 같은 양을 네 끼에 나눠 먹이고 있었던 겁니다. 또 보통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먹기 좋은 쌀밥과 부드러운 반찬을 먹었는데, 건강한 아이를 키운 집은 어른들이 먹는 새우와 게를 밥에 섞어주었고 식용으로 쓰지 않던 고구마 잎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분석해보니, 아이들의 위는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소화시킬 수 없기에 네 끼 식사가 같은 양으로 보다 많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고, 새우, 게, 고구마 잎은 부족한 단백질과 비타민을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선 스터닌은 시범 삼아 10개 가정씩 묶어서 이런 식으로 식습관을 바꾸게 했습니다. 그러자 6개월 만에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65%나 개선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달라지자 새로운 식습관은 어머니들의 입 소문을 통해 베트남의 곳곳으로 전파되었고, 영양실조 문제는 대폭 개선되었습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정확히 규명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가끔씩 발생합니다. 이때 우리는 대부분 문제를 찾아내고 원인을 분석하는 데 수고를 들입니다. 그리고 그 분석 결과는, 모두 알고 있지만 풀기 어려운 해결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베트남 아동 영양실조의 원인을 빈곤, 위생 및 수도 시설 부족 등으로 분석하듯이 말입니다. 이때 답을 먼저 찾아보는 것은 어떤가요? 그러면 문제가 더욱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소비자의 문제점이나 불편함을 분석하려고 하지 말고, 소비자에게 곧바로 답을 주는 쪽으로 발상을 바꿔보는 것은 어떤가요?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아무도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을 갖게 되자 예전에는 느끼지 못하던 불편함과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젠 스마트폰 없이 외출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낍니다. 지하철에서 심심하고 약속 장소를 쉽게 찾아가기도 힘들죠. 소비자들의 요구는 새로운 제품이 나와야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답을 먼저 내는 것은 스마트폰처럼 거창한 신제품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문제가 너무 작아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도 효과적입니다. 가령 제품을 만들 때 불량품이 아니더라도 만족스럽지 못한 제품을 생산할 때가 많습니다. 불량 기준을 간신히 넘겼기 때문에, 세밀한 분석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미묘한 문제의 원인을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때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을 그대로 따라 해보면 문제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혹은 경험 많은 베테랑에게 물어보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해보았을 때, 모르던 문제를 그 과정에서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제리 스터닌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스터닌은 베트남에서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긍정적 극단치(Positive Deviance) 운동을 펼쳤습니다. 「긍정적 이탈」이란 제목으로 책도 나와 있습니다. 이 운동은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습니다. 영양뿐 아니라 교육, 공공보건, 범죄 등 적용 범위도 넓어졌고, 최근에는 비즈니스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놀라운 극단치의 효과가 평균이라는 폭군 속에 숨어 있습니다. 의외로 우리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거든요.” 문제를 분석하지 말고, 답을 먼저 찾아보기. 주변에서 한번 찾아보십시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capomaru@gmail.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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