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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에는 1년에 하루 친척들이 모여서 노는 모임이 있다. 제주 출신으로 수도권에 사는 친정 식구들인데 사촌들과 그 자녀들까지 이삼십명 모여 야외에서 운동도 하고 음식도 먹으며 논다. 조카들이 커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기 낳아서 데려오는 것까지 보게 되는 정겨운 모임이다. 조 편성을 해서 피구와 족구, 제기차기, 알까기, 제주 사투리 맞추기 게임을 하면서 많이 웃는다. 이렇게 훈훈한 모임에서 얼마 전 내가 큰 사고를 쳤다. 피구를 하다가 부상으로 무릎 골절을 입은 거다. 내가 119 구급대에 실려가 수술하는 걸로 그날 행사는 막을 내렸다. 앞으로 피구 족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나 때문에 판이 깨진 것 같아 미안하다.

그날부터 의도하지 않은 휴식에 들어갔다. 수술, 깁스와 목발… 연구실도 나가지 못하고 강의와 코칭도 쉴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하늘이 준 강제 휴식이니 푹 쉬면서 재충전하라고 했다. 

우리 안의 노예 감독 
내가 한창 열심히 직장생활을 할 때는 쉬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시간을 허비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쉬고 난 일요일 저녁에는 미묘한 죄책감까지 발동하면서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럴 땐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걸로 투사했던 것 같다. 우리 마음에는 노예 감독이 있다고 한다. 쉴새 없이 더 열심히 하라고 몰아붙인다. 쉬거나 빈둥거리는 걸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다. 노예감독의 목소리는 주로 어릴 때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대했던 방식이 내면화 된 것이라, 무의식에 깊이 자리잡는다.
문제는 비합리적인 수준인데도 여전히 우리 감정과 행동을 조정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연수는 이런 글을 썼다.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용한 사람이 된다. 시를 읽는 일의 쓸모를 찾기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날마다 시를 찾아서 읽으며 날마다 우리는 무용한 사람이 될 것이다. ……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순수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오, 정말 좋은 글이다. 잘 썼다. 노예감독에겐 무용함으로 맞서는 거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별일 없이 산다”를 처음 들었을 때 난 이 밴드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랐다. 혹시 모르시는 독자라면 그 노래를 들어보시기를 권한다. 완전 발랄한 전복적 가사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산다, 그런데 별다른 고민 없다, 하루하루가 즐거웁다”로 이어지는 라임에 앞서 장기하가 부르는 첫 가사는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다. 하하.. 확신하건대 이건 분명 노예감독들에게 한 방 먹이는 노래다.

별일 없이 시를 읽는 시간
몸의 회복이라는, 비생산적이기 짝이 없는 이유로 집에 머무르며 그래서, 내 인생은 고귀한가를 생각해본다. 환자라, 가족과 친구로부터 살뜰한 돌봄을 받는 존재가 되어봤다. 아, 좋다! 예전엔 약속을 정해야 했는데 아무 때나 집으로 오면 만날 수 있는 나는 지인들에게 아주 가용한 존재가 되어봤다. 기분 괜찮다! 바쁜 일정 탓에 대충 넘길 뻔했던 번역 원고를 더 찬찬히 정성을 기울여 고치게 되었다. 뿌듯하다! 목발을 짚으니 작은 문턱 하나가 얼마나 커다란 장애가 되는지 깨닫게 되었다. 더 공감한다! 저녁 네온사인이 켜진 술집에서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 경험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삶을 더 즐기고 싶다!

이 시간, 휴가 없이 일하는 친구에게도, 휴가 다녀와서 일로 복귀하는 게 힘든 친구에게도, 시를 읽으며 잠시 무용해지고 또 고귀해지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해주고 싶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