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뒷담화는 직장인의 소소한 즐거움 중의 하나다. 동료나 후배에 대한 불평불만을 면전에서는 차마 못하더라도,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는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 상대방이 맞장구를 쳐주면 더욱 신이 난다. 상사에 대한 뒷담화는 더 짜릿하다. 술자리에서 상사의 뒷담화가 빠진다면 무슨 맛으로 술을 마시랴? 뒷담화가 있기에 직장인들은 우울증에 걸리지도 않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동료와 갈등이 있었던 날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늘어놓는 뒷담화는 마치 피로회복제와 같다. 상사에게 억울하게 혼난 날 저녁에, 상사를 안주로 하는 뒷담화가 없다면 이 팍팍한 직장생활을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실제로 직장에서의 뒷담화는 필요악과 같은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어제의 나쁜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기분으로 일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뒷담화라는 게 묘한 구석이 있다. 신나게 뒷담화를 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혹시 이 말이 그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살짝 생기기도 하고, 혹시 상대방이 나를 불평불만을 일삼는 사람으로 오해할까 염려되기도 한다.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걸까? 이는 뒷담화가 지닌 네 가지 속성 때문이다. 첫째, 뒷담화는 자신의 그림자다. 심리학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여러 가지 모습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만 자기의 정체성으로 인정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모습은 자기가 아니라고 부정한다고 한다. 이렇게 부정된 자기의 모습을 일컬어 ‘그림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그림자를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스스로 부정된 자기의 모습, 즉 자신의 그림자’가 발견되면, 그걸 포착하고 비난하게 되는데, 이를 일컬어 ‘투사’한다고 한다. 뒷담화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여러 모습 중에서 자기가 싫어하는, 자신의 부정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했을 때, 이걸 붙잡고 시비하는 것이 바로 뒷담화다. 뒷담화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서 보이는 허물은 곧 자신의 허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뒷담화는 오직 자신이 싫어하는 모습의 ‘투사’일 뿐이다. 그러므로 뒷담화는 ‘자신의 그림자’를 붙잡고 시비를 거는 것과 같다. 둘째, 뒷담화는 자신의 무의식에 저장된다. 신경언어프로그래밍(Neuro Linguistic Programing)이론에 의하면, 우리들의 말은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무의식에 씨앗으로 저장되어 더욱 강화된다. 이를 일컬어 불교에서는 ‘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라고 한다. 현재 자신이 하는 말(현행, 現行)은 모두 씨앗(종자, 種子)이 되어 무의식에 저장된다는 것이다. 뒷담화는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라, 무의식에 저장되어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더욱 강화시킨다. 셋째, 뒷담화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각인시킨다. 상대방은 나의 말을 통해 나를 기억한다. 내가 하는 말은 곧 나의 이미지가 된다. 상대방에게 화를 많이 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화를 잘 내는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뒷담화를 많이 했는가? 당신은 뒷담화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여태까지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대부분의 직장이 상하좌우 동료들끼리 서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360도 평가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때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말은 평가에 그대로 직결된다. ‘남의 험담을 많이 하는 사람’, ‘부정적인 사람’, ‘불평불만을 일삼는 사람’. 이런 평가는 모두 그동안 내가 만들어 온 이미지의 결과다. 공식석상에서 이런 이미지를 만들었겠는가? 이런 이미지는 주로 뒷담화를 통해 만들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이 웃고 즐겼던 뒷담화가 자신의 승진과 연봉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뒷담화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넷째, 뒷담화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자신이 한 뒷담화는 언젠가는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게다가 복리의 이자까지 붙어서 돌아온다. A부장의 이야기다. A부장은 자신의 상사인 상무에게 지시를 받고 오거나, 회의에 갔다 오면, 언제나 상무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이번 마케팅 계획은 말도 안 돼! 경쟁사들이 이미 실행했던 거고, 아무런 전략도 없어’ ‘상무님은 현장을 알기나 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현장에는 한 번도 가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A부장은 상무의 지시사항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술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심지어는 사무실에서도 A부장의 불평불만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런 A부장의 행동이 상무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A부장의 뒷담화는 돌고 도는 과정에서 훨씬 더 부풀려져서 상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결국 A부장은 지방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뒀다. 이렇게 뒷담화는 돌고 돌아서, 더 부풀려져서, 언젠가는 당사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뒷담화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룬드벡코리아에 근무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인 이혜원 상무는 말한다. ‘뒷담화를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혀를 깨물어라! 혀를 깨물고 참아라!’ 그렇다. 뒷담화를 참는 것이 바로 인격수양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iamcoach@naver.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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