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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가 VOD로 나와서 온 가족이 함께 보았습니다. 딸과 함께 영화관에서 본 영화를 한번 더 본 것입니다. 또 봐도 재미있더군요. 온갖 동물들이 사이 좋게 살아가는 주토피아에서 생긴 일을 다룬 걸로,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d)인 미국에서 만든 영화답게 다양성을 옹호하는 내용입니다. 체류 외국인이 140만 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나라는 순혈주의 풍토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사이언스誌에서 읽은 재미있는 논문이 생각났습니다. 2003년 미생물학자인 베도프(Bjedov) 교수와 동료들이 방대한 박테리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수많은 동물의 내장을 포함하여 다양한 서식처에서 대장균을 추출했습니다. 박테리아 연구에서 대장균을 주로 쓰는 이유는 다른 미생물에 비해 동질적이기 때문인데요. 무려 787개의 접시에 대장균을 배양하여 의도적으로 가혹한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영양분을 빼앗아 굶주리게 하거나 산소를 차단하여 생명 유지를 어렵게 하는 등 가혹한 환경에서 대장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조사했습니다.

가혹한 환경에서도 대장균들은 생식을 멈추지 않고 개체수를 늘렸습니다. 특이한 점은 돌연변이를 급격하게 많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도 미생물학계에서 비슷한 연구가 발표됐는데요. 가혹한 환경이 박테리아의 돌연변이율을 증가시키는 것을 두고 학자들의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환경 적응성을 높이고자 개체의 다양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돌연변이를 만든다고 주장했고요. 다른 쪽에서는 가혹한 환경이 박테리아의 생체기능에 충격을 줘서 돌연변이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반론을 폈습니다. 원전 사고가 난 후 수백 배 크기의 달팽이가 생기거나 등이 휜 물고기, 공포스럽게 생긴 해바라기 등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얘기죠.

그래서 베도프와 동료들은 돌연변이가 어떻게 진화되는지 기록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돌연변이와 비교했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돌연변이나 정상적인 환경에서 나타난 돌연변이나 똑같은 분포를 그렸고 진화에도 똑같이 기여했습니다. 다만 가혹한 환경에서 증가된 돌연변이들이 진화 프로세스를 통해 개체의 다양성을 높였고 환경에 적응하는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돌연변이가 적응성을 높인다는 가설이 사실로 입증된 것입니다. 베도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돌연변이가 만들어지는 원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유전자의 명령을 받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종’ 수준에서 돌연변이를 늘렸는지, 아니면 스트레스에 의한 부작용으로 나타났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이 원인을 규명한 게 아닙니다. 원인이 어떤 것이건 간에, 돌연변이의 증가는 다양성을 가져와 진화 프로세스를 빠르게 진행시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즉 환경이 점점 가혹해지면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결과적으로 나타난 것이든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흥미로운 통계도 얻었습니다. 육식동물과 인간과 같은 잡식을 하는 동물의 배에서 추출한 대장균이 돌연변이율에서 서로 다른 수치를 보였습니다. 가혹한 환경이 되면 육식동물의 대장균이 돌연변이를 더 많이 만들었던 겁니다. 저자들은 환경의 영향이 중요하다고만 결론 내렸는데요. 과학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거기까지지만 우리는 이유를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잡식동물은 육식동물에 비해 다양한 먹이를 섭취합니다. 대장균의 입장에서 잡식동물의 내장이 훨씬 변화가 많고 적응이 어려운 환경입니다. 평소 가혹한 환경에서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이 생긴 대장균이 환경 변화에 더 강하기 때문에 돌연변이를 더 적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이 연구는 물벼룩의 생태를 떠오르게 합니다. 물벼룩은 연못이나 습지에서 서식하죠. 이들은 무성생식을 합니다. 암컷들이 작은 주머니 속에다 자신과 똑같은 새끼를 낳는 것이죠. 그래서 물벼룩 공동체는 암컷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성생식은 번식이 쉽기 때문에 개체수를 쉽게 늘립니다. 그런데 가뭄이 들거나 겨울이 다가오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암컷이 수컷을 낳기 시작하고 유성생식으로 방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유성생식을 통해 만들어진 알들은 다양성이 늘어나 가뭄이나 겨울을 버티는 녀석이 반드시 나오는 것입니다.

올해도 벌써 상반기가 지나갔지만 환경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는 게 좋고 편할 때는 개체를 쉽게 늘릴 수 있는 무성생식이 효율적이고, 환경이 가혹해지면 다양성을 늘리는 유성생식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뭔가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조직 내 다양성을 늘리는 일은,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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