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 한 사람은 직업이 총무이다. 모든 동창회는 기본이고, 독서 모임, 등산 모임까지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주말에도 2박 3일씩 동창들과 어딘가를 다녀오느라 가족들도 얼굴 보기가 힘들다.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작은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고 모아놓은 돈도 거의 없다고 들었다. 지난 번 전세금이 올랐을 때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간신히 메웠단다. 아이들은 아직 대학생이라 계속 돈이 들어가야 한다. 몇 년 후면 정년이고 노후 계획도 없어 보인다. 난 그를 볼 때마다 궁금증이 생긴다. 빠듯한 월급쟁이가 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저렇게 돌아다니고도 힘이 남아있는지, 무엇보다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여러 모임을 돌아다니는지 그 이유가 알 수 없다. 아마 남모르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난 통계에 관심이 많다. 통계를 보면 그 사회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알고 싶은 건 사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모빌리티(Mobility)이다. 얼마나 돌아다니는지 알고 싶다. 이는 둘로 구분할 수 있다. 일로 돌아다니는 것과 일이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그것이다. 영업을 위해 돌아다니는 것은 일로 만나는 것이다. 일이 없어도 움직이는 것은 여행과 모임이 대표적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개인당 몇 개의 모임을 하고 있는지, 모임의 빈도는 어떤지를 알고 싶다. 인당 자동차 주행거리도 알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가설이긴 하지만 한국인의 모임숫자, 빈도, 주행거리가 전 세계에서 3위 안에는 분명히 들것이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기를 쓰고 모임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모이는 걸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그러는 걸까, 아니면 외로워 그러는 걸까? 모이면 외롭지 않고 모이지 않으면 외로울까? 사업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모이는 걸까? 누군가를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럴 수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모이는 걸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관계를 통해 얻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요즘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다른 것도 재미있지만 중국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이 흥미롭다. 그 중 하나가 꽌시에 관한 것이다. 꽌시란 본질적으로 이너서클이다. 이들은 사람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꽌시 속에 들어온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이다. 일단 꽌시 속에 들어오면 모든 일이 순조롭다. 부탁을 하거나 들어주는 것이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꽌시를 만들고 유지한다. 근데 꽌시를 만들 때 가장 필요한 게 있다. 줄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꽌시는 만난다고 생기고 안 만난다고 안 생기는 게 아니다. 내가 줄 게 있고 상대도 줄 게 있어야 한다. 꽌시의 본질은 주고 받음이다. 우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근데 수많은 모임을 가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제법 있다. 줄 건 없고 얻어가려는 사람으로 차고 넘친다. 그런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 친교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 식의 친교는 한계가 있다. 나도 알고 상대도 안다. 좋은 꽌시를 위해서는 우선 내가 뭔가 줄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돈이 되었건, 자리가 되었건, 지혜가 되었건 줄 게 있어야 한다. 그럼 사람들이 온다. 아무리 열심히 모임을 쫓아다녀도 줄게 없으면 그건 죽도 밥도 아니다. “가난하면 번잡한 곳에 살아도 찾는 사람이 없고, 돈이 있으면 산 속에 살아도 친척이 찾아온다.” 중국의 속담이다. 만남은 중요하다. 인간은 만남을 통해 무언가를 주고 받고 나누면서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근데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난 몇 가지 원칙 아래 모임을 한다. 무언가 배우고 지적으로 자극을 주고 받는 모임을 제일 좋아한다. 과거지향적 모임보다는 미래지향적 모임에 끌린다. 비슷비슷한 사람들 모임보다는 다양한 사람들 모임에 마음이 간다. 저녁모임보다는 점심 모임을 선호한다. 다음은 순서이다. 내 우선순위 넘버원은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는 것이다. 이게 가장 소중하다. 오전에는 가능한 이런 일에 시간을 쓰고 싶고 이후 남는 시간을 모임에 쓰고 싶다. 내가 밤늦은 모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 모임의 여파가 새벽시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모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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