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 한 분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 지금까지 맞벌이를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녀를 보면 참 짐이 무거운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친정 쪽이 그렇다. 형제 중 유일하게 결혼을 했고 친정어머니가 근육위축증으로 하루하루 몸이 약해지고 있다. 그 쪽 집안 사람들은 장녀인 그녀에게 많은 걸 의지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되지 않으니 답답해 보인다. 아이들이 까다롭다.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태생적으로 예민해 부모를 힘들게 한다. 학교를 들어가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같이 밥을 먹어보면 정신이 없다. 가끔 만나는 나도 그런데 매일 같이 지내는 부모 입장에서 보통 일은 아니다. 시집 쪽으로도 골치 아픈 일이 많다. 남편은 성실하긴 하지만 특출나진 않아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지 불안하다. 가끔 밥을 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우리 부부가 하는 일의 전부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내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한다.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우리 또한 어떻게 하면 그를 도와줄 지를 궁리한다. 가끔 선물도 주고, 아이들 용돈도 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온 몸으로 감사함을 표시한다. 감동으로 울 듯한 표정을 짓고 답례로 무얼 보내기도 한다. 그러니 더욱 잘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는 명절도 가까워졌길래 상품권을 주었더니 답례로 좋은 건강보조식품을 보내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지만 그녀에게 선물을 할 때 가장 신이 난다. 선물을 통해 두 가족 사이에 화학반응이 뜨겁게 일어나는 걸 느낀다. 명절 때 가장 필요한 건 현금이다. 참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요즘엔 취직한 딸들이 아내에게 돈을 주는 것 같은데 그 돈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지는 않는다. 아내 편에 받았다는 얘기만 들을 뿐이다. 어머님과 장모님께 드리고, 아직 공부 하는 조카들에게도 용돈을 준다. 그 동안 신세 진 분들에게 두루 선물도 돌린다. 선물을 하다 보면 받는 사람에 따라 편차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반갑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통해 고마운 마음을 표시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위의 사람처럼 온몸으로 감사함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겐 더욱 잘하고 싶다. 아주 가끔은 별 대꾸를 안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걸 기대하고 선물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인지라 아무 반응이 없으면 기분은 별로이다. 속으로 혹시 배달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반응이 없는 게 반복되면 그 쪽에는 선물을 하지 않게 된다. 헛돈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감사의 한자는 感謝인데 파자를 해 보면 이렇다. 감(感)은 다할 함(咸)에 마음 심(心)이다. 마음을 다 하는 것이 感이란 말이다. 사(謝)는 말씀 언(言)에 쏠 사(射)를 쓴다. 말로 쏜다는 말이다. 사례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거절한다는 의미도 있다. 말을 통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 있다면 이를 표시해야 한다. 말이 되었건 작은 선물이 되었건 쏘아야 한다. 혼자 속으로 감사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부처님도 아닌데 상대가 감사한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관계란 주고 받음을 통해 발전하고 성장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 중 하나는 사랑의 주고 받음이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고 잊지 않고 안부도 전하고 때가 되면 선물도 주고 만나자고 하고 밥도 먹고… 나 또한 그가 생각나서 연락도 하고 안부도 주고 받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간 주고 받음이다.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근데 반응이 없으면 그런 관계는 오래 가기 어렵다. 일방적인 짝사랑의 불꽃은 꺼지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주기만 하는 사람, 받기만 하는 사람, 주고 받기를 하는 사람,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사람이 그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는 주고 받기를 잘 하는 사람이다. 사람간 관계는 생명체 같은 것이다. 오래된 관계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무너지고, 별거 아닌 관계도 정성을 들이면 관계가 깊어진다. 뭔가 받았을 때 감사하는 것, 답례를 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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