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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바둑의 최고수가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던 겁니다. 대국 이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세돌의 일방적인 우세를 예측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사실 인류가 기계문명을 발달시킨 이래 기계는 계속해서 인간의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그건 인류에게 축복이었죠. 하지만 정신적인 영역에서까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자 앞으로 기계에게 밀려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의 이런 발전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글에서 이번 대결을 제안한 것은 자신들이 만든 인공지능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도 모르기 때문이었죠. 현재 인공지능은 머신러닝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가동됩니다. 컴퓨터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데이터를 저장해서, 이 빅데이터를 검증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알고리즘을 스스로 개선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쌓인 데이터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성능이 좋아질 지 모르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인공지능 기술은 일기예보, 의료진단, 주식예측 등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월스트리트가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빨아들인다고 하네요. 이런 상황을 두고 이제는 미래를 더 정확히 예측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즉 인공지능으로 인해, 더 정확히 말하면 빅데이터 기술로 인해 인류는 전에 없던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인류는 더 나은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통찰력이란 무엇인가요?

도시에 온 원주민 추장 이야기
20세기 초에 영국 탐험가들이 말레이시아의 고산지대에서 독특한 종족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지형적으로 격리된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놀라운 것은 원시시대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죠. 이들은 아직 바퀴조차 고안해내지 못한 문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종족의 추장은 매우 지적이었으며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고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아주 사려 깊은 인식을 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탐험가들은 이 추장을 싱가포르에 데려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싱가포르는 큰 배들이 정박할 수 있었고 높은 건물들이 들어찬 잘 정비된 항구시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거래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전문적으로 특화된 시장경제 체제를 갖추고 있었고요. 사회적으로도 추장이 살고 있던 원주민 사회보다 훨씬 다층화된 구조를 띠고 있었습니다. 탐험가들은 이 추장을 24시간 내내 데리고 다니며 세상을 보게 했습니다. 내심으로는 그가 자신의 원주민 사회를 바꿔놓을 수 있도록 수많은 신호들을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 뒤 탐험가들은 이 추장을 다시 고산 계곡에 데려다 놓고 지난 경과를 되뇌게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보았던 수많은 경이로운 경험들 중 그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한 장면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것만 기억해냈습니다. 그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한 사람이 운반할 수 있었던 바나나보다도 더 많은 바나나를 운반하는 사람을 보았던 기억뿐이었죠. 그 추장은 높은 건물들이나 거대한 배가 무엇을 연상시키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장사꾼이 바나나를 가득 채운 수레를 밀고 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의 유용성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모든 다른 시그널들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세계로부터 너무나 멀리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두뇌가 그가 보고 있었던 것을 감지해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회에는 미래를 향한 수많은 시그널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그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시그널들은 무의미한 잡음에 그칠 뿐이죠. 미래의 시그널을 보는 능력,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통찰력은 오랜 기간 고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나 동료의 실수로부터 영감을 얻어 위대한 아이디어를 발굴한 일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발굴한 사람이 오랜 기간 그 사안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는 것입니다. 뉴턴이 오랜 기간 중력에 대해 고민해오지 않았다면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낼 수는 없었을 겁니다. 오랫동안 고민해왔지만 뭔가 하나가 빠진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원주민 추장처럼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인공지능이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분석해내도, 그래서 아주 강력한 시그널이 눈앞에 나타나도 그 가치를 알아챌 수 없을 것입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capomaru@gmail.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