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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oaching Letter From CMI
 
   
 
  은행 신임지점장교육을 간 적이 있다. 미리 가서 있는데 행장이 바쁘다며 행장이 한 말을 녹화해서 30분간 틀어주고 지점장들을 그 얘기를 듣고 있다. 내용은 지루하고 뻔한 얘기다. 최근 경영지표를 늘어놓으면서 위기의식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변화하고 혁신하라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내용도, 개인적인 고백도, 재미난 스토리도 없는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얘기를 거의 30분간에 걸쳐 늘어놓았다. 듣는 사람들은 지루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아무 감흥도 변화도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듣고 있었다.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저런 비디오를 녹화해서 틀어주는 건 뭔가 지점장들에게 감동을 주어 행동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근데 과연 목적을 달성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저런 건 모두의 시간을 낭비한 쓸데없는 행위이다. 행장은 행장대로 녹화하는데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을 썼을 것이다. 50여명이 넘는 지점장들 또한 30분 이상의 시간을 썼다. 모두에게 아무 유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행장은 아무 메시지도 전달하지 못했지만 뭔가를 전달했다는 착각을 했을 것이고, 지점장들은 자신들은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신임지점장이 되었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비디오로 행장 얘기를 듣는 별볼일 없는 존재라는 사실만을 확인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뉴스시간에 나오는 대통령이 무언가를 읽는 것을 볼 때도 내 마음은 답답하다. 왜 허구헌 날 저렇게 뭔가를 읽을까? 저걸 쓰고 읽는 목적은 무얼까? 쓰고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일까? 아니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오를 다지게 하고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일까? 근데 과연 듣는 사람들은 목적대로 그런 마음이 생길까? 저 원고는 누가 써 주었을까? 본인이 생각해서 썼을까 아니면 비서관들이 써주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도 저도 아니란 생각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쓰는 사람은 엄청난 시간을 썼을 것이고, 듣는 사람도 듣느라 귀한 시간을 썼을 것이지만 그렇게까지 영양가 있는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차라리 원고를 써 왔다면 같이 읽고 거기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기자들에게 오픈되지 않은 시간에 정말로 친밀감 있는 시간을 서로 교환했을 수도 있다. 지금의 내 생각이 제발 틀렸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기도 한다. 

우리는 참으로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많이 쓴다. 기념일 같은 때 사람들을 잔뜩 모아 놓고 뭔가를 읽는 것이 대표적이다. 매일 회사 생각을 한다면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키워드만 정리해 눈을 보고 얘기하면서 직원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회사 상황을 설명하고, 직원들에게 협조를 구할 수도 있고, 비전을 설명하면서 직원들을 설득할 수도 있다. 자신의 원하는 대로 직원들을 이끌고 갈 수 있다. 근데 그 귀한 시간에 왜 원고를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목적이 뭘까? 준비한 원고를 읽는 것은 모두에게 손해이다. 일단 말하는 사람이 손해이다. 말하는 사람은 목적달성에 실패했다. 그를 보고 사람들은 “저 사람은 원고를 보지 않고는 자기 생각조차 전하지 못하는 수준의 사람”이란 사실만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을 뿐이다. 세상에 원고 읽는 것을 듣고 감동 받는 사람은 없다. 앉아서 듣는 수많은 사람들은 귀한 시간을 손해보고 있다. 원고 읽는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길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근데 왜 이들은 원고를 읽을까? 보지 않고서는 얘기할 수 없을까? 원고를 보고 읽는다는 것은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아직은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즘 하우스오브카드란 미드를 재미있게 있다. 정치를 둘러싼 모략의 드라마다. 난 다른 것보다 주인공 캐빈 스페이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감탄을 한다. 탁월하다. 완벽하게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든 후 얘기한다. 그는 원고를 거의 보지 않고 얘기한다. 나 같은 경우는 강의가 직업이라 훈련되어 있어 그렇고 대부분의 경영진은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가질 수는 있다. 기회가 되면 이들을 돕는 스피치 코치 같은 일을 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심플하다. 원고를 보고 읽을 바에는 말하지 마라. 완벽하게 소화가 되었을 때 키워드만 준비해 얘기하라. 그게 읽는 사람도 살리고 듣는 사람도 살리는 길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