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요즘이 대학원 면접 시기라서, 내가 있는 대학의 리더십과코칭 전공 MBA에 지원하는 분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경력이 높든 얕든 다시 배우는 여정에 나서는 게 참 설레는 일인 것 같다. 10년 혹은 20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되려는 지원자들에게서 조용한 흥분과 희망의 에너지가 강렬하게 느껴졌고 면접을 보면서 나도 그 에너지에 감염이 되는 느낌이었다. 나도 직장에 다니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 학위과정을 마쳤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80년대엔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은 부유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다 돈을 벌고 물정도 좀 알고 나서야 대학원에 갔다. 만학도로서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던 날, 학교측이 마련한 축하 자리에서 사회자가 둘째 아들 승수에게 마이크를 주며 한마디 하라고 했다. “밤 중에 깨어 나가보면 엄마가 책상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적이 많았는데…. “라고 해서 사람들을 웃게 하더니 “졸면서도 계속 공부해서 박사가 된 걸 보니 역시 노력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마무리했다. 어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로 결론을 내린 탓인지, 승수가 말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실제 직장 다니고 아이들 키우면서 공부를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과제도 많고 읽을 것도 많고 시험과 발표는 왜 그렇게 자주 돌아오는지! 하지만 막상 학교에 가려고 차에 타서 운전대를 잡으면 마음이 행복했다. 아랫배 밑에서부터 알 수 없는 충만감이 밀려 올라왔다. 마땅히 할 일을 하는 사람의 안정감이랄까, 그런 느낌이었다. 교실에 학생으로 앉아서 배우고 듣는 것 자체가, 실용적인 목적을 떠나서 참 좋았다. 동기들과도 다른 인간관계와는 다르게 격의 없이 친해진다. 있는 그대로, 때론 부족하고 못난 모습까지 서로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한 번은 지인인 삼성인력개발원 신태균 부원장님이 식사하다가 ‘공부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보통 이런 질문은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하기 때문에, 나는 점잖게 되물어보았다.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역시, 그의 준비된 답이 바로 돌아온다. 공부란 “‘As-is’ 와 ‘To-be’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를 내린다는 거였다. 와! 참으로 명쾌한 설명이다. 군더더기 없이 한마디로 똑 떨어진다. 공부라는 건 원하는 곳으로 가는 다리를 놓는 것이다. 그러니 지향점이 있는 사람에게 공부란 앞으로 나아가면서 깨우치는 과정이고, 그래서 행복한 것이다. 나도 배우길 좋아한다. 나중에 은퇴하면 사이버대학이나 방송통신대학에 등록하여 원 없이 공부를 하며 지내고 싶다. 인류학은 공부하고 싶은 분야다. 역사학도 더 배우고, 아, 기력만 된다면 영시(英詩)와 한시(漢詩)도 배우고 싶다.
고통 없인 얻는 게 없다 (No Pain, No Gain) 물론 공부에 행복만 따르겠는가? 내가 헬싱키에서 MBA 과정을 할 때다. 무섭기로 소문이 나서 별명이 미저리인 여자 교수님께 국제경영론을 배웠다.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으셔서 온화하다고 생각했는데, 공부에 관한 한 봐주는 것이 없었다. 한 번은 학생의 발표를 듣다가 중단시키고는 혹평을 퍼부었다. “이 발표에서 ‘전략’이라는 걸 찾아볼 수 있느냐?” “노!“라고 말하며, “빵점 짜리 발표”라고 망신을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평생 잊지 못할 말을 했다. “MBA를 통해 여러분이 배워야 할 것은 ‘전략’이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쇼’가 아니다” 그날 이후 헬싱키 중앙역 앞 펍에서 노닥거리며 맥주 마시던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나도 밤새 발표준비를 해야 했다. 나의 멘토이자 코치인 한근태 교수님은 학습법에 관심이 많은데, 학습의 원칙을 ‘No Pain, No Gain’이라고 정리해주었다.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면 배우는 것도 없다는 거다. 편안하고 쉬운 공부에서는 남는 게 없다.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졸음을 참으며 몸을 괴롭히면서 얻어지는 게 공부다. 그렇게 보면 결국 배운다는 건 사서 하는 고생이다. 사서 하는 고생길에 들어서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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