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20대 청년이 된 조카와 얘기하다 보니, 자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제법 있었다. “아빠가 어떤 날은 ‘너를 믿는다! 알아서 잘할 거야.’라고 말하세요. 속으로 ‘나를 믿고 기다려주시는구나’ 마음이 좋죠. 그런데 바로 다음날 ‘도대체 앞으로 뭐 할라고 그러냐고, 뭐 하나 제대로 준비하는 게 없지 않냐고 다그치시는 거예요. 차라리 믿는다고 하지나 마시지!” 그 대목에서 나는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 집 아빠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부모도 부모 노릇을 엄청 고민한다는 걸. 아마 그 아버지는 저녁에 성당에 가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을 잡고 왔을 지도 모른다. 다음 날은 청년 실업에 대한 기사를 보고 아들에 대한 조급증이 되살아 났을 수도 있다. 이렇게 고민하고 흔들리는 마음은 아이들에겐 보이지 않는다. 자녀들이 볼 때 부모는 확신에 차 있고 완고하게 보여진다. 하지만 자식을 앞에 두고 완벽하다고 느끼거나 고민이 없는 부모는 거의 없다. 늘 부족하게 느껴지고 흔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도 부모가 ‘되어가는 중’이다.
직원들은 모르는 상사의 흔들림 직원들도 상사가 그렇게까지 고민하는 걸 잘 모른다. 상사니까 확고하게 완성된, ‘다 된 사람’ 취급한다. 하지만 실은 상사도 ‘되어가는 중’이다. 자극을 받고 흔들려가면서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딱 고민한 그만큼 뭔가 달라진다. 경영자 코칭을 하다 보면 임원들도, 지위 높은 CEO도 실은 구성원들의 반응에 대해 민감하다. 심지어 자신이 지나치게 직원들 눈치를 본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런 흔들림은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행동에 대한 확신의 부족은 스스로 성찰하고 더 나아지려는 동기로 나타난다. 그렇게 보면 ‘이미 되었다’는 마음이 차라리 위험하다. 다 안다는 태도로는 무엇도 배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분에게 미래를 대비해 학습이 필요하지 않냐고 했더니, ‘학습할 시간도 없지만.. 솔직히 책을 쌓아놓고 많이 읽는 사람들이 뭐가 나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 정도면 되었다’, ‘이 상황에선 누구도 나처럼 할 수밖에 없다’는 자족적인 시각에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장 위험한 것이 다 안다는 마음 어쩌면 우리 삶 전체가 제대로 된 무언가를 향해서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가? 치기 어렸던 과거의 행동은 가끔 기억에서 튀어나와 우리 얼굴을 붉게 만든다. 예전에 쓴 글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잘 모르면서도 용감하게 썼는지 얼른 치워버리고 싶다. 아, 더 괴로운 건 어디선가 돌아다니고 있는 강의 동영상들이다. 누가 인터넷에서 봤다고 인사하면 얼른 숨고 싶다. 아마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도 몇 년 뒤에 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 것이다. 완성품이라기 보다는 되어가는 것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되어가는 중이니 좀 봐주면서 살살 대해주기로 하면 어떨까? 내가 가끔 말을 바꾸더라도, 한 얘길 잊어버리더라도 너무 나무라지 말고 좀 봐주면 좋겠다. ‘왜 아빠는 어제는 믿는다고 하시고 오늘은 다그치세요?’ 라고 항변은 할 수 있지만, 하지만 말야, 그거나 이거나 다 너를 위한 마음에서 하는 말임을 좀 이해해주면 안 되겠니? 내가 어떻게 해야 너에게 진짜 좋은 아빠 역할을 하는 건지, 고민이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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