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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디스턴스의 장난질

 

어느 상사가 마음 먹고 직원을 불러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 조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직원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 완벽한 조직이 어디 있나요? 그래도 과거보다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다지 특별한 의견은 없는 것으로 판단한 상사를 나중에 상당히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그 직원이 동료들과의 자리에서 열변을 토하면서 우리 조직은 문제가 심각하고, 불합리한 제도가 많고, 상사 태도도 완전 잘못되었다며 엄청난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아니, 뭐야? 이 친구,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잔가?”

하하하이중인격자라서 그렇다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뭔가 거기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 홉스테드(Hofstede)는 파워 디스턴스(Power Distance)’ 라는 개념을 소개한 사회학자다. 파워 디스턴스란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간의 간격, 즉 거리감을 뜻하는 말로, 국가와 문화마다 정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상사와 부하, 부모와 자식 간에 파워 디스턴스가 심한 문화가 있고 상대적으로 적기도 하다는 것인데, 한국은 파워 디스턴스가 큰 나라에 속한다.

앞서 예에서는 직원이 이중인격자라서가 아니라, 상사 앞에서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기가 불편하게 만드는 파워 디스턴스가 존재했다고 해석하는 게 맞지 않을까? 문제는 파워 있는 측은 이 파워 디스턴스를 잘 못 느끼는데 반해 파워 없는 쪽은 느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실존의 문제가 되어 버릴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상사와 일대일로 대면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회피하고 싶은 일이 되기도 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는 항공기 사고의 원인을 파워 디스턴스와 관련해 해석하는 대목이 나온다. 비행기 조종실에서 어떤 기관사나 부기장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느꼈을 때도 즉각적이고도 분명하게 조종사에게 말하기 보다는 우회적이고 느리게 말한다. ‘상사에게 무례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문화적 파워 디스턴스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혹 치명적인 항공사고로 이어진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가르치는 사람이 될수록 상대방이 느낄 파워 디스턴스를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걸 모르면, “왜 앞에서 얘기하라고 하면 우물쭈물 하고선 뒤에서 딴 소리?”라고 우리 직원과 자녀, 학생들만 못난이를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뛰어난 개인도 멍청한 조직을 이길 수 없고, 우리는 모두 우리가 속한 문화의 산물이다. 진정 그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는 파워 디스턴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더 안전한 대화의 공간을 만들어 주라. 어떤 얘기를 해도 혼나거나 찍히지 않을 것 같이 안심할 수 있게 대해 주고, 별 것 아닌 아이디어에도 감사를 표하며 격려하라. 적어도 그런 노력이 쌓여야 이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