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당시 큰 글로벌 기업의 한국 부사장님이었던 분이 이런 얘길 들려주었다. ”이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모두 정직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모든 일을 처리합니다. 예를 들어 영업부의 젊은 직원도
업무상 회사 돈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신청하면, 바로 재무팀에서 그 직원의 신청서만 보고 돈을 내어
줍니다. 줄줄이 몇 단계 상사의 결재를 받기 위해 기안하고 설명하고 결재 나기를 기다리는 데 쓸 시간이
확 단축이 되죠. 업무가 그렇게 빠를 수가 없어요.”
듣던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믿는 것도 좋지만, 그런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아주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바로 해고조처를 취하죠. 예를 들어 작은 경비라도 회사를 속이고 개인 이득을 취했다면 그
사실이 발각되는 즉시 회사에서 퇴출시키기 때문에, 웬만큼 어리석은 직원이 아니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을
겁니다.”
마치 바이러스를
놔두면 점점 퍼지면서 감염시키는 것처럼, 부정직한 직원을 이런 저런 이유로 용인하면 다른 직원들에게도
파급이 크기 때문에 즉시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신뢰수준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들이
더 있었다.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모든 경영진들이 아주 검소하고 소탈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사장으로 부임해서 갔을 때 사무실은 아주 작았고 책상
하나에 전화 한 대가 전부더란다. 명함 신청을 했더니 안내 데스크에서 연락이 와서 1층에 와서 받아가시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한국의 큰 기업에서 일하던
이 분이, ‘사람을 무시하는 건가?’ 라고 오해할 뻔했으나, 미국 본사에 가 봤을 때 본사 CEO의 사무실도 자기와 똑같은 사이즈에
아무 장식이 없는 소박한 방인 걸 보고 오해가 풀리더라고 한다. 심지어 창업주인 회장이 맥도날드에서
주는 쿠폰을 모았다가 직원들 점심을 사는 걸 보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고 한다. 이 회사가 바로, 한때 주식가치가 한국 전체 증시 총액을 넘을 정도의 규모인, 시스코시스템즈이다.
신뢰가 있으면
속도는 빨라지고 비용은 내려간다. 그것이 ‘신뢰의 속도’가 말하는 바다. 샌프란시스코의 두 젊은이가 창업한 벤처가 이렇게
큰 글로벌 기업이 되는 데 이런 신뢰가 밑바탕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해준 사례다.
반면 신뢰가 없으면
확인하고 감시하느라 의사 결정과 실행의 속도가 얼마나 느려지겠는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관행들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혹시 신뢰의 부족에서 오는 시간 낭비와 에너지 소모가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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