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사람이 여기 있다. 슬픔에
마음이 쓰라리고 괴롭다. 감정에 휘감겨 있을 때는 어떤 이성적인 말에도 귀를 기울이기가 어렵다. 이런 사람에게 코치가 강력한 질문을 던졌다고 해보자.
“이 상태가 지속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물론 질문 자체는
좋다. 파워가 있다. 단,
어디까지나 듣는 사람이 질문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고자 할 때만 효과가 있다. 감정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코치가 던지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지점으로 바로 가기가 힘들다. 지금 그 사람에게는
미래를 바라볼 힘이 없다. 너무 큰 감정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감정은 이성을 앞선다. 그래서 이런 ‘진취적인’ 질문은 비록 긍정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코치
받는 사람과의 연결을 오히려 단절시켜 버린다.
예를 들어 건강이 나쁜 사람이 코치에게 호소한다. “지난 1년간 노력했는데, 검진 결과 좋아진 게 없네요.. 너무 우울합니다.” 미래지향적인 코치가 질문한다. “우울해 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요? 당신이 되고 싶은 모습과 비전을
생각해보세요. 지금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아마 듣는
사람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키기보다는 ‘감정이 통하지 않는’ 느낌만을
전달할 것이다.
현재에 함께 머물러주는
것의 가치를 아는 코치는 상대방을 미래로 성급하게 데려가는 대신에, 그 사람이 온전히 현재를 깊게 체험하도록
돕기 위해 이렇게 대화를 한다.
“지금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건강이 나쁘니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감정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혹시 몸의 어디에선가 그런 느낌이
느껴집니까?”
“가슴에서 느껴집니다. 아주 무거운 것이 제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네요.”
“무엇이 그렇게 마음을 무겁게 하는지 말씀해 보세요.”
“제가 패배자처럼 느껴져요. 다른 사람들은 저만치 달려나가는데 나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요.” “또 무엇이 힘들게 하나요?”
“친구나 가족에게 귀찮은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요.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좋아하지 않죠. 다들 부담스러워하니까요.”
말하는 사람은
감정에 북받쳐 울 수도 있다. 코치는 그를 쉽게 위로하거나 혹은 반박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그 순간을
그와 완전히 함께 머물러줄 뿐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외면하고 싶어했던 것을 함께 봐준다. 마치 뭐가 뭔지 모르는 물건들이 쌓여 있는 컴컴한 창고,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문을 닫아버린 그 창고 앞에 서서, 문을 열고 손전등으로 하나하나 빛을 비춰보면서 무엇이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 같은 역할이다.
놀랍게도 빛을
비춰보고 나면, 두려움은 사라지거나 줄어든다. 내가 정말
두려워한 것은 ‘몸이 아픈 것’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었음을 직면하고, 그것이 괴로움의 원천이었음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환한 빛이 내리쬐면
막연하게 과장되고 비관적이었던 생각도 객관성을 얻게 된다.
코치는 그의 감정이
분출되는 순간에 함께 머물러준다. 그냥 오롯이 그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충분히 머물고 나면, 코치가 어떤 인풋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은
자신의 힘과 지혜로 그 상황을 빠져나올 준비가 된다. 어려운 순간을 함께 충분히 머물러 준 후 코치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그 사람은 대답한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겠어요?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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