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외부 강의를 나가 보면, 의무적으로 교육에 참가한 참가자들을 만나게 된다. 회사에서 반드시 참석하라고 했으니까, 혹은 승진하려면 들어야 하는 교육이라서 등 자발적이지 않은 동기로 참석한 사람들이다.
한 번은 내가 그런 참가자들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했다. “이 자리에 스스로 선택해서 오셨습니까?”라고. 즉각적으로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이 몇 명 눈에 띈다. 회사 방침이라서 왔다는 생각에서인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다시 물어 본다. “만약 여러분이 오지 않기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요? 어떻게든 오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 면에서 이 교육에 참가한 것은 나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제 생각이 좀 많아진 표정으로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내 질문은 이게 끝이 아니다. 선택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봤다. “여기에 온 것으로 선택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 교육기간에 여러분께서는 어떤 존재가 되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학습자가 되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참가한 사람들과 잘 사귀는 네트워커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뒤에 물러나서 구경하는 관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선택도 가능하겠지요. 어느 것이든 옳고 그른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코치로서 여러분께 생각하도록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도록 도울 뿐입니다. 이래야 한다, 저러면 안 된다 하고 당위를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이 배우러 온 코칭이 하는 일입니다.” 라고.
이런 질문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학습자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은 배우는 데 더 초점을 맞출 것이다. 네트워커가 되기 원한 사람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사귀고 대화를 할 것이다. 관찰자가 마음 편히 눈앞의 풍경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을지 모른다. 질문을 받고 선택을 한 이후에는 훨씬 더 의식적으로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코칭이란 바로 그런 선택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의식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일이다. 인생은 선택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 피상적이고, 뻔하고, 상투적인 선택지들밖에 없다. 마지못한 선택,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선택, 물론 그것도 선택은 선택이다. 하지만 코칭에서의 선택은 풍부한 새로운 관점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창의적이고, 중립적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어떤 선택이 가능한지를 놀이처럼, 브레인스토밍하듯이 탐색해간다. 그런 다음에야 에너지 넘치는 선택이 가능해진다.
코액티브 코칭에서는 여러 가지 관점을 탐구하는 프로세스가 있다. 예를 들어 힘든 도전 과제를 맡은 사람이 있다. 그에게 도전과제를 비유해보라고 하자 마치 낑낑대며 굴려야 할 큰 바윗돌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것도 하나의 관점이다. 관점을 탐구하기 위해 코치는 더 물어본다. “당신 앞에 생수가 놓여 있군요. 만약 물의 관점에서 그 도전을 보면 어떻게 보이나요?” “음.. 물처럼 언젠가는 흘러갈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자, 창문 밖의 하늘을 보세요. 푸른 하늘의 관점에서는 무엇으로 보이나요?” “이 도전을 해결하면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무실의 관점은 무엇인가요?” “직원들이 저에게 책임을 다하라고 하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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