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면 현지채용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이 만만치 않다.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해외 법인장 한 분을
코칭하면서, 현채인 직원이 앞에 있다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해보시라고 했더니, “제발 알아서 좀 챙겨라”’고 일갈하신다. 하하…. 안타깝게도 번역이 정말 어려운 말이 바로 ‘챙긴다’는 것, 그것도
‘알아서’라는 엄청난 의미를 함축한 수식어까지 함께라면!
외국인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고함축의 언어는 그 밖에도 많다. ‘(상사를) 잘
모셔라’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눈치껏 해라’ ‘잘 좀 해라.’ 등등..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 짧은 말의 의미를 잘 파악하기 때문에, 몇 마디 안 하고도 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현채인들에게 세세히 설명하고 지시해야 하는 것이 힘들고 적응이 안 된다.
반면에 ‘알아서 하는’ 우리의 속성은 이렇게도 나타난다. 글로벌 기준에 맞춰 ‘업무 매뉴얼’을
세세히 만들어 비치해도, 실무 담당자가 그대로 따라 하지 않고 눈치껏 알아서 처리함으로써 매뉴얼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정해진 일 처리 프로세스보다 인간 관계를 중시하여, 똑같은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봐주기도 하고 안 봐주기도 한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저서 <문화를 넘어서(Beyond Culture)>에서 고맥락(High Context) 문화와
저맥락(Low Context) 문화를 설명한다. 저맥락 문화는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직설적이고 명료하며, 자기 의사를 말과 문자로 분명히 밝힌다. 반면 고맥락 문화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우회적이고, 애매하며, 언어에 담긴 뜻이 함축적이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고려한다. 의사소통에 있어서 의미 전달이 말이나 문자에 의존하는 부분이 클수록 저맥락 문화이고, 명시적 표현이 적을수록 고맥락 문화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 고맥락의 문화라서, 솔직하고 정확하고 직설적인 서양인의 의사소통 방식이 동양인에게는 무례하거나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또 같은 서양이라도 북유럽은 남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저맥락의 사회라고 한다. 아마 요리법을 알려주면서 ‘소금 적당량’을 넣으라고 하면 독일인들은 반문할 것이다. “몇 그램이요?”
우리 내부는 어떨까? 친밀할수록 고맥락 문화가 형성된다. 가족? 말할 것도 없다. 아예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알아줄 것처럼 기대한다. ‘바쁜데 뭐 하러 오냐? 그냥 쉬어라’는 부모의 말을 오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했다간 크게 모자란 사람 취급 받을 것이다. 거래처 사람에게 인사 좀 드리라는 상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해서 정말 인사만 꾸벅 하고 왔다가는 쫓겨날지
모른다.
-
PREV 감정을 부르는 것은 내가 쓴 스토리
-
NEXT 극기복례(克己復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