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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떻게 코칭 공부를 하게 됐나’ 하고 물으면 난 웃으며 짧게 대답하곤 했다. “영문도 모르고….” 난 신문기자였다. 동아일보에서 28년. 경제부, 사회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경제부장, 부국장, 논설위원을 거친 전형적인 언론인 경력이다. 이렇게 언론 현장에서 일하다 신문사들이 출연·출자해 설립한 단체와 기업에서 CEO 직을 맡아 10년간 재직했다. 마지막 직장 생활이었던 기업 대표로 옮길 당시 양해된 조건은 '두 번의 임기, 6년 근무'였다. 신문 산업의 구조적 쇠퇴로 그 기업의 경영은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었지만 나는 열정적으로 일했고 경영 성과도 뚜렷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자 시절 좋은 인연과 그렇지 못한 인연을 동시에 맺었던 한 사람이 우리 회사에 인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왔다. 내 첫 임기가 끝날 즈음 그는 내 등 깊숙이 비수를 꽂았고 나는 내 뜻과 달리 퇴임해야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 수용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고, 분노와 울분의 시간이 시작됐다. 사나이 가는 길 바람 불고 비 온다 기자 시절,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스스로를 다독일 때, 또 실망한 후배들을 추스를 때 주문처럼 뱉던 말이다. "사나이 가는 길, 바람 불고 비 온다." 좀 더 강한 처방이 필요하면 이런 말도 했다. "사무는 사무적으로." 일을 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최선을 다하되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지나치게 실망, 좌절하는 등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는 취지였다. 다시 외던 이들 주문이 통했을까, 퇴임 후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내 남은 시간을 분노의 늪에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코칭 공부한 지 8년 된 가까운 지인이 제안했다. "코칭을 공부해 보는 것은 어때? 당신과 잘 맞을 것 같은데." 코치가 된 그가 삼성전자 등 유수한 기업의 임원을 대상으로 코칭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난 좀 의아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스탠퍼드대 MBA 출신으로 금융권에서 경력을 쌓아 금융사 CEO까지 지낸, 단단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의 유능함, 전문성, 그리고 인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의문이 있었다. 물어봤다. “네가 훌륭한 것은 잘 안다. 그런데 고객사에서 임원까지 올라온 사람이면 웬만한 조직인 이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본인이 후배들을 코칭 해야지 왜 네게 코칭을 받는 거지? 그리고 흔쾌하게 받기는 하는가?” 그는 “짧게 설명하기 힘들다. 지금은 당신 일이 바쁠 테니 그 일부터 열심히 하라”라며 웃어넘기곤 했다. 그러던 그가 이번엔 먼저 코칭 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이러저러한 교육과정에 얘기해 뒀으니 바로 등록해.” 말 그대로 엉겁결에, 영문도 모르고 입문한 것이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존중하고 경청하며,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코칭. 내 어찌 이제야 접했단 말인가. 더 젊었을 때 새겨 익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리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학습이 진행될수록 코칭이 좋아졌고 몇 달 후부터는 주변에 코칭을 적극 알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인생사 혹은 가정사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경우 무료 코칭을 적극 제안했고(라이프 코칭),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대학생 혹은 사회 초년병 조카를 봐도 바로 코칭을 시작했으며(커리어 코칭), CEO로 일하는 지인과의 대화 중 경영 이슈가 감지되면 자연스럽게 코칭에 스며들었다(비즈니스 코칭). 때로는 이렇게 제안하기도 했다. “임원 모두가 함께 코치 기초교육을 받도록 해보세요. 조직 전체의 리더십을 코칭 리더십으로 확 바꾸는 겁니다.” 이 제안은 제법 수용됐다. 재정의된 내 인생의 의미 얼마 전 ‘From Transition To Transformation’이란 제목의 강의를 들었다. 전직(轉職)이 아니라 변신(變身)하라는 메시지였다. 강의 중 등장한 한 문구가 유독 와 닿았다. ‘좌절 = 고통 - 의미’ 듣자마자 ‘와, 이건 내 얘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은 퇴임은 분명 준비되지 않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후 코칭이라는 새로운 학습과 실천을 통해 발견한 의미가 커지면서 문자 그대로 드라마틱 하게 좌절의 무게가 줄어드는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반 년쯤 지나자 다음과 같은 생각도 하게 됐잖아. ‘그때 내가 대표직에서 잘린 것이 더 잘된 일 같아. 만약 연임했다면 사양 산업의 사장으로 3년 더 일하는 것에 그쳤을 테고, 퇴임 후엔 나이 탓에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기 힘들었을 거야. 그런데 코칭은 내 몸이 건강하고 열정이 닿는 한 계속할 수 있지. 내가 기자로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 애쓰며 그 일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듯이, 이제 코치로서 내게 남은 사회적 삶을 살 수 있게 됐잖아. 나와 주변 사람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최상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우며 말이야.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장 직 몇 년 더 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삶이야.’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한때 나를 짓눌렀던 울분과 좌절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내가 더 좋은 삶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내 스스로 삶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의미로 재정의한 것이다. 마법 같지 아니한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tigera1@naver.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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