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앉아서 읽고 쓰는 것은 가둬놓고 하루 종일 해도 기꺼이 할 수 있지만 운동에는 참 흥미도, 재능도 없었는데요. 제게 운동은 해도 어려운 것,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수영을 하면서 비로소 처음으로 재미라는 것을 느껴보고 있습니다. 어릴 때 수영을 배워서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멀리서 누가 보면 수영을 하는 것인지 허우적대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실력이라 언제고 한 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쉽진 않더라고요. 몇 달이 지나도 계속 숨 쉬는 타이밍을 놓치고, 코로 물이 들어와 따가워 죽겠고, 마음과 달리 팔과 다리는 따로 놀았습니다. ‘역시 나는 운동은 안 되는 것이구나.’ 좌절하던 중 정말 평소와 똑 같은 수업 시간, 그동안 그렇게도 되지 않던, 팔을 노처럼 써서 힘을 빼고 물살을 헤치며 가라는 선생님 말씀이 갑자기 이해가 됐습니다. 정말 갑자기 되더라고요. 저는 언어를 매우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언어에는 도구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가치와 문화가 다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어에 민감한 만큼 언어의 한계를 민감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영역도 분명하게 있다 생각하는데, 몸의 영역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계속 스스로 차이를 느껴야 한다, 그 차이에 따라 몸의 균형을 잡고, 힘을 빼는 타이밍을 느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대체 무슨 소리지? 초보가 가능한 일이야?’ 했는데, 미약하게나마 느끼고 나니 한 방에 이해가 되더라고요. 물론 100번의 설명이 바탕이 되었으니 이해도 가능했겠지만요. 그러면서 새삼 느낍니다. 세상의 모든 성장에는 반드시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 ‘버티는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성장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모든 성장은 계단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가끔 현실이 답답할 때, 이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열면 파라다이스가 열릴 것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것 또한 인생이지만, 문만 여닫다가 끝날 수 있는 것도 인생입니다. 내가 고민해서 선택한 길에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바로 성과를 보이지 못해도, 축적의 시간을 지나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축적의 시간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거죠.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면, 그 시간을 온전히 보냈다면, 누구에게나 성장의 시간은 옵니다. 제가 수영에서 성장을 보였던 것처럼요. 물론 저는 약간의 성공 경험을 맛본 뒤 아마도 또 헤매겠지요. 그래도 이 경험이 바탕이 되어 조금은 더 오래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가수 지오디(g.o.d)의 노래 ‘길’의 일부입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또 그 길 끝에 나는 어떤 모습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또 그래서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면 분명 다음 계단이 또 나올 테니까요.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athy2112@naver.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
PREV [코칭경영원] 신임 리더의 길잡이 5 EYES
-
NEXT 다음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