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자녀로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부잣집 자녀가 공부까지 잘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성격까지 좋고 마음 씀씀이까지 좋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어려운 사람을 배려할 수 있다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축복이다. 근데 부자가 그렇게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가끔 내가 부잣집 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버지가 부자인데 내가 공부할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노력을 안 한다고 가세가 기우는 것도 아니고 먹고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동기부여가 안 됐을 것이다. 조금 하다 안 되면 그런대로 살았을 것이다. 어려운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돈이 없으면 은행 가서 찾으면 되고, 쌀이 떨어지면 라면을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가난한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은 한꺼번에 두 가지를 주지는 않는다. 부자에게는 당뇨병을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식을 주는 법이다. 변호사 남편과 의사 부인이 결혼을 했다. 인물이 좋고 공부도 잘하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금슬도 좋았다. 얼마 후 아이를 낳았는데 아토피 증세가 심하다. 둘째도 낳았는데 역시 아토피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심했다. 부부는 절망했고 하나님까지 원망했다. 방법이 없었다. 운동을 열심히 시키고 식단도 철저하게 조절했다. 패스트푸드는 물론 가공식품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자식들에게만 이를 강요할 수는 없어 부모들이 솔선해서 그 일을 했다. 괴로운 일이었다. 세월이 흐른 후 부부는 이런 말을 했다. “참 원망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헌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큰 축복이었어요. 이 나이에 이렇게 건강하기 쉽지 않거든요. 완전 표준 체중에 잔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애들 아토피 덕분에 우리들이 이렇게 건강해졌답니다.” 당뇨병으로 고생을 한 소설가 최인호 씨도 비슷한 고백을 한다. “당뇨병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율적으로 공부하지 못하는 열등생에게 매일매일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처럼 내 게으른 성격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평생을 통해 먹고 마시는 일에 지나치지 말고 절제하라고 숙제를 준 것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귀찮고 싫은 게 있으니까 예쁜 것도 예쁜 줄 알게 된다. 미운 게 있으니까 사랑스러운 것도 있다.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니까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다. 각박하고 험한 세상이라 하니까 그렇지 않은 좋은 세상이 생각난다. 만약 좋은 사람만 있는 세상이라면 더 이상 좋은 세상이 아니다. 금이 좋긴 하지만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면 더 이상 금은 좋지 않다. 부처는 ‘보왕삼매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다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하셨느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맘대로 하기 어렵다. 병이 생기는 것도, 자식이 속을 썩이는 것도, 가난으로 힘들게 사는 것도…. 하지만 그 일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우리 삶은 해석 기술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마음의 평화도 그렇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세상을 보는 기존 가설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하고, 내게는 병이 있으면 안 되고, 우리 자식들만 잘나가야 하고 등등. 그래서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길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Why me?’다. 즉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묻는다. 잘못된 가설이고 잘못된 질문이다. ‘Why me?’ 대신 ‘Why not me?’라고 물어야 한다. 내게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누구에게나 비슷비슷한 일은 일어난다. 부자라고, 지위가 높다고 병이 안 오는 건 아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늘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나한테도 언제든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건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는 것이다. 해석을 잘하고 해석에 맞게 행동하면 불행한 사건도 괜찮은 사건으로 바꿀 수 있다. 그게 사는 맛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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