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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코치가 카톡 프로필을 ‘나답게 살자!’로 바꾸었다. 평소 나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을 공감하고 친절하게 배려하는 후배 모습이 떠올랐다.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프로필을 보는 순간 왠지 안심되고 응원하고 싶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후배가 더 이상 남들의 인정과 관심에 의존하지 않고 실수나 실패를 했다고 실망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같은 복장과 머리를 하고 학교를 다녔다. 대학 졸업 후 다닌 직장에서도 회사가 제공하는 유니폼을 입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기보다 회사에서 시키는 것을 해치우며 살아왔다. 그 시절은 생산성과 효율성이 개인의 독특함보다 우선시되던 시대였다. 지금처럼 변화가 빠르고 고도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개인의 독특함을 찾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럼에도 나답게 산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규범, 소셜 미디어의 페르소나 등 가면 뒤에 숨어 주위의 관심과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남들과 비교하고 눈치를 보며 그들의 관심과 인정을 기다린다. 또 누군가는 ‘나답게 산다’는 말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겠다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말 아니냐고도 한다.


대체 ‘나답게 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첫째 ‘미래를 위해 사는 것’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과거의 나’ 또는 ‘타고난 나’를 찾는 질문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내 행동이 기대하는 결과는 무엇인가?를 묻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원하는 것을 묻는 말, 즉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둘째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이다. 고립된 삶은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지만,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살아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노란색이 검은 배경 속에서 더 잘 보이듯이 내 모습은 관계 속에서 더 잘 드러난다. 내가 그렇듯 서로 다른 다양한 타인들의 관점을 조율하고 각자의 자기다움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나다움’은 명료해진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다움’은 개인의 이익을 넘어 자신이 속한 가정, 조직, 지역사회 그리고 더 큰 세상에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용기 있게 사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과 가치를 존중하면서 자기다움에 충실하려는 노력은 쉽지 않다. 더욱이 완벽을 추구하는 삶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한 점, 취약한 점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삶이다. 안전지대에서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방해하는 불편함 속에서 용기를 내는 삶이다. 그것을 숨기고 타협하려는 욕구를 멈추고 용기 내어 드러내는 것이다.


나답다고 생각하는 내 모습을 고집하는 것은 과거의 나, 안주하고 싶은 나로 사는 것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 신념, 강점, 열정 등 진정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찾고 그것을 향한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내일의 내 모습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늘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나답게 산다’는 것은 ‘Be true self’가 아니라 ‘Becoming True self’ 아닐까?

* 칼럼에 대한 회신은 jongkim1230@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